◆정태신 산자부 생활산업국장 기고문
‘월드컵 개최와 국가 이미지 개선.’
구치·페라가모·카르티에·조르지오 아르마니,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제품 가격이 수십, 수백만원을 호가하지만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적금을 들고 모임을 만들어 구입한다는 소위 ‘명품’들이다. 이들 제품은 질적으로 우수한 측면도 있지만 대부분의 가치는 오랫동안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에서 나온다. 이런 브랜드 파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날로 더해지면서 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어떻게 이미지를 높일 수 있을까가 중대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는 오는 5월과 6월에 걸쳐 우리 민족의 최대 행사이자 전세계인의 축제인 2002 한일 월드컵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기업들이 기업의 이미지 홍보를 위해 각종 이벤트를 활용하듯 월드컵 개최는 우리나라의 국가 이미지를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 틀림없다.
최근 정부가 우리나라의 통합적인 이미지로 ‘역동적인 한국(다이내믹 코리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홍보에 힘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이미지는 우리 기업과 상품이 해외 시장에서 경쟁할 때 일종의 후광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상품의 품질과 기업의 기술 수준은 많은 영역에서 이미 세계일류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제값을 못받으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국산 제품에 비해 결코 나은 것이 없는데도, 또는 아예 OEM 방식으로 국내에서 제조·공급한 상품임에도 선진국 브랜드라는 이유로 몇 배의 가격을 받는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거꾸로 세계 일류상품은 한 나라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유지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GE, 영국의 버버리, 독일의 BMW, 일본의 소니, 네덜란드의 필립스, 핀란드의 노키아 등 기업의 일류 브랜드 이미지가 일류 국가 이미지를 이끌어가는 예도 많다. 이런 점에서 기업·상품 이미지와 국가 이미지는 순치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기업·상품 이미지와 국가 이미지가 병행개선되고 상호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과제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일류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하고, 국가 이미지를 선도할 만한 일류기업·상품의 수도 많지 않다. 때로는 우리 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특히 선진국 시장에서 국가 이미지를 등에 업고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이미지가 오히려 짐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일부 한국 기업은 한국 상품이라는 사실을 가급적 숨기려고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월드컵이 국가 이미지 개선과 관련해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국가이미지라는 것은 그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요소가 총체적으로 반영돼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이미지 개선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단순한 구호 몇 마디와 몇 개의 이벤트, 잘 연출된 홍보물로 국가 이미지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국가 구성원이 필요성을 절감하고 총체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를 향해 우리의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월드컵 준비만으로 국민을 통합해 세계일류 국가로 도약하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고 이를 세계 각국에 보여줄 수 있는 월드컵 개최 자체가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한 더없이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월드컵은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한 하나의 기회이지 끝이 아니다. 월드컵 개최 준비과정이 국가 이미지를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내부를 다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월드컵 개최 이후 이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국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국가로서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효과적으로 알리는 노력과 이를 위한 세밀한 준비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준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도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쟁력있는 기업과 상품이 전제되지 않은 국가 이미지 제고는 허망하고 실속없는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우리 상품과 기업이 세계로 더욱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브랜드·기업·국가 이미지가 상승적으로 병행발전돼 나가야 하며, 이번 월드컵이 브랜드·기업 이미지는 물론 국가 이미지를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생각을 바꾸고 몸으로 실천해 나가야 할 때임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