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31일.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 다시 한번 세계의 중심에 선다.
한일 월드컵이 개최되는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전세계 주요 언론 매체는 물론 약 10억명에 이르는 축구팬의 눈과 귀가 한국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기간동안 한국은 과연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아마도 우리가 그랬듯이 대다수는 축구경기에만 관심을 가질 뿐 월드컵 개최국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까지 뒷짐만 지고 있을 순 없다.
지구촌 최대 이벤트인 월드컵을 개최하게 된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가장 효과적으로 한국(코리아)이라는 브랜드를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월드컵 개최를 통해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은 전국민의 염원인 16강 진출이나 수조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얻어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민관 합동으로 추진하는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디지털 코리아’를 세계적인 국가 브랜드로 육성해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국가브랜드 시대=세계 주요기업은 동일한 제품을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현지 생산기지에서 생산, 지역마다 다른 브랜드로 판매하는 글로벌 생산·판매체제를 구축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요즘 소비자는 똑같은 제품을 구입하더라도 국가브랜드(메이드인)를 꼼꼼히 따져보고 값을 차등 지급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일본 도요타의 코롤라와 미국 체비의 노바는 똑같은 모델의 자동차로 브랜드만 다른 트윈자동차다. 이같은 사실은 소비자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는 코롤라를 더 선호하며 가격도 기꺼이 더 지불하려 한다. 메이드인재팬이 듣든한 후광이 돼주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국가브랜드’라는 보고서를 통해 “21세기에는 제품브랜드·기업브랜드 못지 않게 국가브랜드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브랜드란 외국 소비자가 ‘코리아’라는 세 글자를 접했을 때 머리 속에 떠올리는 것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구체적인 제품을 접하기 때문에 단순히 코리아보다는 메이드인코리아(Made in Korea)를 더 자주 접한다. 따라서 메이드인코리아가 바로 한국의 국가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메이드인유에스에이에서는 실용성을, 메이드인이태리나 프랑스에서는 패션성을, 메이드인재팬에서는 소형 첨단성을 먼저 떠올린다. 각 나라마다 강력하고 독특한 연상, 즉 국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메이드인코리아라는 국가브랜드는 외국인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춰질까. 꼼꼼히 생각해볼 대목이다.
◇국가브랜드 마케팅을 펼쳐라=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기업경쟁력의 핵심 요소이듯 국가의 브랜드 가치 또한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원천이다. 국가브랜드 마케팅이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때마침 우리나라는 가장 효과적으로 국가브랜드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지구촌 최대 이벤트인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있다. 월드컵 개최는 한국 이미지를 세계인에게 강하게 심어줌으로써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월드컵을 통해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일은 개최국의 전략과 노력에 따라 엄청난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세계 굴지의 기업이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위해 스포츠 이벤트를 활용해 마케팅 활동을 벌이는 것처럼 국가브랜드 마케팅에도 이러한 스포츠 마케팅 기법을 도입·적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는 성공적인 대회운영을 지원하는 것과는 별도로 국정원·외교통상부·문화관광부·공보처 등 관련 부서를 망라한 국가 마케팅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마케팅하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국가브랜드 인지도와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국가브랜드 진흥정책 못지않게 개별 기업의 노력 또한 절실히 요구된다. 그간 기업은 국가브랜드를 외면한 채 자사 브랜드 인지도만을 높이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과 국가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세계적인 브랜드가 많이 나오면서 국가브랜드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코리아’를 세계적 국가브랜드로=지난 1월 아시아 기업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동계가전전시회(CES)의 개막연설자로 나선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네트워크총괄 진대제 사장은 1시간 30분에 걸친 기조연설을 통해 청중에게 디지털 코리아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외국 소비자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은 ‘메이드인코리아=싸구려’라는 이미지를 지우고 ‘디지털 삼성=디지털 코리아’라는 이미지를 새로 심어주는 것이 거시적인 측면에서 훨씬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진 사장의 설명이다.
월드컵은 외국 소비자에게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한국브랜드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한국하면 떠올릴 수 있는 국가아이덴티티를 추출해 이를 강력하게 구축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 시사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신호에서 ‘대한민국은 디지털 혁명의 본고장’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한국 가정의 절반 이상이 광대역 서비스를 받고 한국인 60% 이상이 휴대폰을 소유하고 있다며 한국의 디지털 열풍을 심층 보도했다.
이처럼 한국이 디지털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세계가 주목하는 이때에 우리는 ‘디지털 코리아’를 국가브랜드로 삼아 월드컵 이벤트를 계기로 세계적 브랜드로 키워 나갈 수 있는 국가브랜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월드컵을 단순한 축구행사가 아닌 전세계에 국내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홍보함으로써 디지털 코리아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국가브랜드 마케팅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월드컵이 끝난 후 외국 소비자가 메이드인코리아하면 디지털 혁명의 본고장에서 만든 제품임을 연상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길 기대해본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