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벤처기업의 성공요건으로 회사의 비전과 전략, 차별화된 수익모델, CEO의 능력 등을 꼽는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경쟁기업들 사이에서 살아남기가 그리 쉽지 않다. 실제로 많은 벤처기업이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현란한 마케팅전략을 통해 단기적인 투자유치나 인기몰이에서는 성공을 거두는 듯 하다가 곧바로 시들고 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쌍용정보통신 SI연구소의 복병학 소장은 사내보(투게더)에 실린 ‘벤처기업이 간과하기 쉬운 것’이라는 글을 통해 1년간 한 벤처업체의 경영현장에 직접 참여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에 대해 얘기했다.
◇CEO의 독선적인 의사결정시스템=벤처기업에서 CEO의 능력과 생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적지 않은 벤처기업 CEO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테두리 안에서 사업의 방향을 판단하고 결정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특히, 전문 엔지니어 출신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예외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벤처기업인은 경영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좀더 많은 의견을 듣고 객관적인 상황판단을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과감하게 전문경영인에게 CEO 자리를 넘겨주고 자신은 대주주로 남아 자기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회사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창업멤버들과 신규인력간의 융화=처음부터 풍족하게 시작한 벤처기업은 드물다. 대부분 대박의 꿈을 꾸면서 철야근무를 밥먹듯 하고 주말과 휴일을 반납해 가며 아이템을 개발한다.
따라서 중도 입사자들에 비해 창업멤버들이 기득권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득권은 우리사주나 스톡옵션 등으로 보상받을 일이지, 그것이 일상업무를 하는 데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생긴다.
발언권이 제한되고 보다 나은 아이디어들이 막히게 되면, 자칫 직원간 파벌이 조성돼 조직운영에 많은 낭비요인이 될 수 있다.
◇기존 기업의 것들을 터부시하는 사고방식=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은 조직적인 업무처리를 위한 기본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기업들의 잘 갖춰진 업무프로세스와 지원시스템을 형식문화라는 이름으로 매도하고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기존 기업의 시스템들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무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기존 기업들이 IMF체제하에서도 꿋꿋이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오랜 검증기간을 거쳐 체계화된 업무프로세스와 관리시스템으로 원가를 최소화하고 업무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밖에 자율적인 사고와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해 채택하고 있는 자율근무시간제도 역시 조직이 커질수록 자율이라는 허울속에 낭비되는 요소가 많아질 수 있다.
또 △급하면 고액연봉으로 스카우트했다가 사업이 안되면 바로 해고해 버리는 편의주의식 고용제도 △팀장 만장일치의 의사결정제도 △능력이 아닌 조직내 특정 직무에 대한 무조건적인 우대정책 등도 재고돼야 할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벤처기업은 나름의 경영철학을 갖고 잘 운영되고 있다. 위에 예시한 내용들이 모든 벤처기업에 해당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기업들에 비해 많은 부문에서 경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모방이나 배제가 아닌, 회사의 규모가 변화해감에 따라 진정으로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인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대박’과 ‘몰락’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 회사가 채택하고 있는 방식들이 진정 회사의 대외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최상의 방법인가에 대해 한번쯤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