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이 하이닉스의 메모리사업을 인수하면 미국은 메모리반도체 시장 주도권도 되찾게 된다. 일본과 한국에 시장 주도권을 내준 지 거의 20년 만의 일이다.
메모리분야에서 내쫓기듯 비메모리분야로 돌아섰던 미국 반도체업체들로선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미국 반도체산업의 르네상스가 열렸다.
◇양손에 떡을 쥔 미국=마이크론의 부상이 아니더라도 미국은 반도체강국이다. 반도체의 간판인 CPU를 비롯해 디지털신호처리기(DSP), 네트워크칩 등 핵심 비메모리 반도체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유일하게 미국과 맞상대하는 일본업체들도 비메모리분야에선 가전용와 같은 비핵심 반도체에서만 강세다.
미국업체들은 또한 설계기술과 반도체장비분야에서 일본와 유럽업체를 압도한다. 이러한 미국 반도체산업의 ‘아킬레스건’은 메모리반도체다. TI의 철수로 미국의 메모리업체는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만 남았다.
그러나 이번에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를 인수하면 메모리시장에서도 선두자리로 복귀할 수 있다. 핵심 반도체분야를 미국이 모두 독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왜 메모리를 고집하나=메모리반도체는 전체 반도체시장의 10%밖에 되지 않는다. 메모리반도체는 경기부침이 심하고 투자부담도 커 사업이 불안정하다. 부가가치도 비메모리에 비해 낮다. 미국업체들도 이러한 이유로 일찌감치 메모리사업에서 손을 뗐다.
마이크론도 1년 가까이 적자를 보면서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다.
미국의 기업풍토에서 이 정도 상황이라면 사업을 접거나 축소할만도 한데 마이크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되레 하이닉스를 삼키려 든다.
또 도시바 미국공장 인수, 중소 메모리 설계전문업체 인수 등 지난해말 이후 공격적인 인수 및 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 왜 그럴까.
“미국 메모리반도체의 유일한 자존심이라서 그렇다.” “비록 하이닉스 부진의 결과이나 삼성전자에 이어 2위로 부상한 데 따른 마이크론 경영진의 착시현상이다.” 업계는 이런 저런 분석을 내놓았으나 메모리반도체의 새로운 힘을 마이크론을 포함한 미국 반도체업계가 새삼 확인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삼성전자가 그 증거다. 메모리시장에서 10년 정도 1위를 지키면서도 하청업체라는 때를 벗지 못한 이 회사가 어느날 갑가지 엄청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모든 칩이 하나로 합쳐지는 시스템온칩(SoC)시대를 앞두고 삼성은 메모리시장을 넘어 비메모리분야로도 진출하려 한다. 삼성 반도체 매출의 5배나 되는 인텔도 최근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미국 반도체산업계나 시스템업체들이 삼성을 견제하기 위해 마이크론의 힘을 북돋고 있다는 분석은 날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제전으로 비화될 듯=미국업체가 비메모리에 이어 메모리까지도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이에 대한 반격도 거세질 전망이다.
메모리 1위를 빼앗긴 삼성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또 메모리시장에서 퇴출당한 일본업체들도 비메모리분야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유럽의 ST마이크로, 인피니온, 필립스도 지난해 점유율 상승을 바탕으로 다시 공세적으로 나설 태세다.
이들 업체는 SoC시대의 도래, 데스크톱에서 모바일로 IT환경 변화 등의 시대 조류를 타고 미국업체에 도전한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고성능 메모리나 일부 가전제품용 칩을 제외하곤 미국업체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인 게 현실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따라서 이들 나라 상위 업체끼지 서로 힘을 합치는 전략적 제휴가 앞으로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맞서 인텔, TI, 마이크론 등 서로 경쟁하지 않는 상위 업체간의 연대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1세기 세계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기타 국가간의 국제전이 시작됐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