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2년 반도체업체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출신 엔지니어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40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IT기업으로 성장한 컴팩컴퓨터가 지난 16일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컴팩의 이번 생일은 2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안겨주는 영예로운 날인 동시에 다시는 맞이하지 못할 마지막 생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비록 합병성사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지만 다음달 중순 열리는 HP, 컴팩의 주주총회에서 합병이 최종 승인될 경우 ‘컴팩컴퓨터’라는 이름은 곧 역사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종이 냅킨에서 서버시스템으로=컴팩은 TI 출신의 로드 케니언, 짐 해리스, 빌 머토 세사람이 미 텍사스주 휴스턴의 어느 식당에서 메모한 종이 냅킨에서 시작됐다. 당시 이들은 우연히 떠오른 이동형 PC에 대한 아이디어를 종이 냅킨에 적으면서 컴팩의 첫 사업아이템을 마련했다.
이 세사람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벤처기업 투자가였던 벤 로젠에게 제안했고 그로부터 3000달러의 투자자금을 얻어 회사를 설립했다. 컴팩은 설립 1년 만에 종이 냅킨의 메모에 기반한 PC를 내놓았고 당시 시장을 주도하던 IBM PC보다 15% 저렴한 가격에 힘입어 그해에만 5만3000대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후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컴팩은 97과 98년에 탠덤컴퓨터와 디지털이퀴프먼트를 잇따라 인수하며 무정지 및 유닉스 서버시스템 분야로 시장을 넓혀갔다.
◇조용한 20세 성인식=컴팩은 20주년을 맞아 협력업체들을 초대해 조촐한 기념행사만을 가졌다. 회장 겸 CEO인 마이클 카펠라스는 전직원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가장 도전적인 시기에 20주년을 맞게 됐다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카펠라스는 HP와의 합병에 대한 언급은 배제한 채 “과거를 교훈으로 삼되 새로운 길과 시장을 찾아야 한다”고 컴팩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으며 “컴팩은 세상을 변화시켜왔고 앞으로 또 다시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차분한 컴팩코리아=국내지사인 컴팩코리아도 본사 창립 20주년에 맞춰 방문객과 직원에게 장미꽃 한송이를 나눠주는 조촐한 이벤트를 벌였다. 현재 컴팩코리아는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올해를 마지막으로 ‘컴팩코리아’라는 이름이 사라지지만 대부분의 직원이 한국탠덤, 한국디지털과의 두차례 합병을 경험한 만큼 큰 동요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컴팩이 ‘시한폭탄’을 품고 있다고도 말한다. 아직은 직원들의 대거 이동 같은 이상기류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다음달 합병이 최종 성사되고 국내지사의 통합작업이 시작되면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워낙 덩치가 큰 두 회사가 합치는 만큼 조용히 진행되기는 힘들 것”이라며 “다음달 본사의 주총 결과가 나오면 어떤식으로든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