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야, 아빠 왔다. 게임 한판 하자!”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의 일상이 바둑에서 게임으로 바뀌었다. TV 프로그램에만 줄곧 눈을 고정시켜온 동생 철호도 게임속에 푹 빠져있다. 어머니는 한쪽 편에서 철호의 편을 들며 훈수를 아끼지 않는다.
이는 22일 이후부터 벌어질 수 있는 우리 가정의 풍속도를 가상해 본 것이지만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니라는 게 게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PS2)’가 22일 드디어 한국에 선을 보였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는 비디오 콘솔게임의 열풍이 몰아닥칠 전망이다.
닌텐도의 ‘게임큐브’와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가 상반기내 선을 보이면서 국내 게임 마니아들은 새로운 게임시대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게임업계에는 ‘폭풍의 핵’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그동안 정식수입이 안돼 용산 전자상가를 통해 어렵게 구해야 했던 게임기를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됐고 TV 또는 신문잡지의 외신란에 소개된 타이틀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볼 필요도 없게 됐다.
비디오 콘솔게임기의 등장은 PC나 온라인게임에 익숙한 게이머들에게 아주 다른 차원의 재미를 선사해 준다.
사실 PC게임이나 온라인, 모바일게임의 경우 그 것을 담는 그릇은 원래 다른 목적에서 개발됐다. 반면 비디오 콘솔게임기는 처음부터 게임을 위해 고안됐다. 따라서 그래픽이나 인터페이스 등에 있어 월등한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콘솔게임의 그래픽은 대부분 3D로 처리돼 있어 2D 위주의 PC나 온라인게임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욱이 콘솔게임기들은 전용 칩을 사용해 3D 그래픽을 처리하기 때문에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선사한다. 비디오 콘솔게임기가 출력장치로 TV를 사용하는 것도 큰 장점이다. 17인치가 고작인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서 벗어나 TV의 대형 화면을 통해 화려하게 펼쳐지는 콘솔게임의 세계는 비디오테이프에 비유할 수 있는 기존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DVD 수준의 화면과 사운드를 선사하게 된다.
실제로 게임을 조작하는 장치도 비교할 수 없다. PC게임이나 온라인게임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해 게임을 조작하지만 콘솔게임은 게임패드나 조이스틱과 같은 게임 전용 장치를 사용한다. 게임 캐릭터의 미세한 동작까지 순간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이들 전용 장치는 게임의 실제감을 한층 고조시킨다.
콘솔게임의 등장은 새로운 게임문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기존에 ‘게임’ 하면 청소년이 자신의 방 또는 PC방, 오락실 등지에서 홀로 즐기는 것을 떠올렸다. 어른과 상관없이 청소년이 그들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비디오 콘솔게임의 장소는 ‘거실’ 또는 ‘안방’이다. 정확히 말하면 텔레비전이 있는 곳이다.
일부 부유층 부모들은 청소년 방에도 TV를 설치해 주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여전히 온가족이 함께 편하게 쉴 수 있는 장소로 한정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비디오 콘솔게임을 할 수 있는 장소는 개방적이고 가족적인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성인들도 게임세상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겼던 추억을 되새기며 어느 순간 게임기를 손에 들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디오 콘솔게임 마니아가 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신작이 출시되면 어린이 사이에 꽤 많은 성인이 껴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다소 생소한 광경이겠지만 우리에게도 이젠 더이상 먼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 셈이 됐다.
수많은 게임타이틀도 매력을 끄는 요인이다. PS2용 게임타이틀만 해도 PS1용으로 출시된 것을 포함해 족히 6000개가 넘는다. 386세대가 10대 코흘리개 시절에 오락실에서 즐겼던 아케이드게임에서부터 최근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PC게임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임이 없을 정도다. 여기에다가 미국과 일본 게임업체들의 수작이 대거 나와있다. 이 많은 게임에서 무엇을 먼저 골라 즐기느냐가 고민거리다.
여기에다 조만간 네트워크 게임도 즐길 수 있다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X박스를 필두로 PS2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마치 한국에서의 비디오 콘솔게임 시장이 열리는 것을 축하라도 하듯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수많은 국내 온라인게임 마니아에게는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초대형 TV를 통해 모르는 누군가와 대전을 치른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흥분된다.
이러한 인기와 기대를 반영하듯 지난 1월 31일 PS2 1만대의 예약판매가 시작되자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모두 동났다. 비디오 콘솔게임에 대한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일부에서는 온라인 및 PC게임에 빠져 있는 국내 게이머들이 비디오 콘솔 쪽으로 쉽게 돌아설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있지만 뛰어난 그래픽과 간단한 조작법 그리고 다양한 소프트웨어는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것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