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시장 빅뱅>(4) 신질서에 대비하라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으로.’

 반도체업체간의 경쟁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메모리·비메모리(시스템LSI)로 나뉜 각 분야의 영역이 허물어져 융합되는 것은 물론, 반도체가 시스템온칩(SoC)으로 바뀌면서 전체 시스템의 핵심 기술까지 탑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업체들은 고객인 시스템업체들과의 표준기술 경쟁에도 나서면서 동시에 제휴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차세대 투자와 기술개발 여부에 따라선 현 업계질서도 몇년뒤에 송두리째 바뀔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표준을 선도하라=반도체업체들은 반도체 관련 표준기술규격을 표준화단체인 제덱(JEDEC)을 통해 확정한다. DDR2 같은 차세대 메모리 규격은 물론 이와 호환되는 각종 칩세트에 대한 기준도 확정한다. 연간 수차례의 전체회의와 분과별 표준작업은 향후 반도체시장을 끌고나가는 핵심축이 된다.

 그러나 요즘 반도체업체들은 JEDEC 못지 않은 각종 표준규격단체에 참여한다. 핵심기술을 확보해야 살아남는 만큼 시스템업체들과 공조해 자신의 기술이 표준화될 수 있도록 발을 벗고 나섰다.

 세계 1위의 CPU업체 인텔의 경우, 3세대 입출력규격(I/O) 표준단체를 만들어 이를 리딩하고 있고 802.11g 등 차기 무선랜이나 10기가비트 이더넷 표준 규격도 직접 준비해왔다.

 AMD도 마찬가지다. IBM·컴팩 등 주요 시스템업체들과 ‘하이퍼트랜스포트’에 대한 표준단체를 만들어 연결장치 규격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적이자 동지인 시스템업체=구조조정이 한창인 반도체업체들간에 요즘 새로운 적에 대한 경계령이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다. 그 대상은 다름아닌 시스템업체.

 핵심기술의 표준화는 물론 최근에는 핵심부품 개발까지도 직접 관장하는 기술력을 갖춘 시스템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비록 생산은 파운드리업체나 외부 협력업체를 통해 아웃소싱하지만 핵심은 시스템업체들이 가져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들이 소니·IBM·마이크로소프트(MS)·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

 플레이스테이션2를 내놓은 소니는 전용 64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CPU)를 직접 개발해 탑재했고 IBM은 구리칩 및 실리콘온인슐레이터(SOI) 등 반도체분야의 핵심기술을 갖고 있는 대표적 시스템업체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역시 ‘울트라스파크’ 등 64비트 서버용 CPU를 자체 생산하고 있으며 자바기술을 기반으로 한 핵심칩 개발도 준비중이다.

 비록 지금은 자체 시스템에만 반도체를 탑재하지만 모토로라나 아기어(전 루슨트 반도체사업부)처럼 언제라도 경쟁자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누가 발빠르게 개발하고 투자할 것인가=뭐라해도 반도체는 장치산업이다.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위 업체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투자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또 IBM·소니 등 핵심 반도체기술을 보유한 시스템업체들도 필요하다면 반도체사업에 직접 뛰어들 태세다.

 일부 기술력과 투자여력이 있는 상위 반도체업체와 시스템업체들이 현 시점에서 투자를 확대할 경우 향후 이들 업체 위주로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10년 넘게 고정되다시피한 업계질서도 앞으로 요동을 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중하위권에 머물던 ST마이크로나 필립스·IBM·소니 등의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 메모리 강자인 삼성전자와 파운드리 맹주 TSMC도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들 회사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표준을 선도하고 시장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는 업체들이다.

 이들의 향후 전략에 따라 반도체세계에 새로운 질서가 생긴다. 변화하는 업계질서에 맞게 생존비책을 마련하는 게 모든 반도체업체들의 화두가 되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