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정보를 전달하면서 전기적 현상을 매개로 하거나 전기적 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넓은 의미의 전기통신이라고 할 때, 최근에는 컴퓨터의 활용과 산업시스템의 자동화에 따른 단순한 기계 또는 외계의 현상변화에 대한 정보를 전기적 수단을 통하여 전달하는 경우도 전기통신 분야에 포함시키고 있다.
전기적 현상을 활용한 통신방식은 정보를 전기적으로 변화하는 과정, 변환된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 그리고 그 정보를 재생하는 과정을 거치며, 또한 정보를 전하고자 하는 상대를 선택하는 기능을 수행하여 이루어진다. 전화네트워크(PSTN)를 예로 들면 사람의 말을 전류로 변화시키는 송화기, 그 전류신호를 전달하는 전송장치, 그리고 상대방과 연결시켜주는 교환장치, 전달된 전기적 신호를 음성으로 바꾸어주는 수화기를 통하여 음성통신을 수행하게 된다. 산업시스템에 활용된 통신장치도 음성대신 데이터의 이동일 뿐 기본흐름은 같다.
전기적 특성을 활용한 통신기능은 다단계로 수행되고, 각 단계마다 복잡하고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통신시스템의 핵심이 되는 교환장치의 경우에는 매우 여러 형태, 여러 단계를 거쳐 변화되어 왔다.
10여 년 전만 해도 소도시에서는 교환원을 통해 전화를 걸어야 했다. 발신자의 요청에 의해 교환원이 인위적으로 수신자를 찾고, 전화를 연결하여 주는 교환방식이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당시 한국통신에서 추진한 전국전화광역자동화 사업이 완료되기 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면 단위 도시에서 사용되었던 방식으로, 아직도 외국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는 교환방식이기도 하다.
교환방식은 자석식, 공전식, 자동식, 전자식 등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다. 또한 각 단계별로 여러 종류의 교환기들이 개발되어 활용되었는데, 특히 컴퓨터와 교환장치가 결합되면서부터 다양한 전자교환기가 개발되고 운용되기 시작하여 통신장치 전반에 급격한 발전을 이룩했다. 컴퓨터가 갖는 데이터의 생성과 수집 분석, 처리, 저장 및 활용의 특성을 통해 통신방식과 기술, 서비스의 변혁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인간의 계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탄생한 컴퓨터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전기적 장치로서 입력자료를 받아들여 처리, 그 처리된 정보를 저장하고 검색하여 결과를 출력하는 일을 하는 기계를 말한다. 인류는 이 컴퓨터를 활용해 정보처리 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고, 통신과 접목되어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통신장치를 무인, 자동화 방식으로 바꾸고 통신망에 유연성을 부여하여 정보통신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컴퓨터가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194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J W 모클리와 P 에커트의 공동설계에 의하여 완성된 에니악(ENIAC)이다. 초기 계산기에 활용된 계전기를 모두 전자관(진공관)으로 대치한 에니악은 사용 전자관의 수가 1만8800개, 저항기 7000개, 무게 약 30톤, 소요전력 120㎾라는 거대한 것이었다. 계산속도도 종래의 계전기식에 비해 1000배 이상이었다. 하지만 개발목적이었던 군사용 탄도계산(彈道計算)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기억용량이 적고, 운영 프로그램이 현재와 같이 기억장치에 저장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어 상업용으로 개발된 컴퓨터 유니박(UNIVAC)은 에니악을 개발했던 사람들에 의해 1951년에 개발되어 시판되었다. 유니박은 미국 인구 통계국에 설치되어 상용화되었다. 유니박은 입력과 연산, 출력을 동시에 할 수 있고 자기테이프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후 트랜지스터와 직접회로를 활용하여 용량의 대형화와 크기의 소형화가 이루어져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었고, 최근에는 모든 가정에서 활용하는 개인용으로까지 보편화되었다.
숫자와 문자를 일종의 전기신호, 즉 펄스의 조합으로 나타내고 그 전기신호에 따라 정해진 출력신호를 논리소자(論理素子)와 결합하여 명령을 해독하고 계산을 실행하는 컴퓨터는 여러 가지 장치로 구성되는데, 핵심장치인 중앙처리장치는 시스템의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명령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가 있으면 주기억장치로부터 꺼내어 활용하게 된다.
주기억장치는 처리속도가 빠른 기억장치로, 각각 고유의 주소를 확보하고 수천만 또는 수억 단어를 기억시킬 수 있다. 또한 명령어와 데이터뿐 아니라 중앙처리장치와 데이터 채널 사이에서 기억한 내용을 주고받는다.
데이터 채널은 중앙처리장치로부터 입출력명령을 받으면 주기억장치에서 채널명령을 취하여 그 명령에 따라 출력장치와 주기억장치 사이에서 데이터를 주고받기는 기능을 수행한다. 데이터 채널에는 카드판독(card read) 장치·프린터·자기테이프 장치 등 많은 입출력장치와 대용량의 보조기억장치, 그 밖에 데이터 전송의 전송제어장치·도형표시장치 등의 특수한 입출력장치를 접속할 수 있다.
초기의 컴퓨터는 초보적인 ‘정보처리’ 업무를 수행했다. 따라서 컴퓨터는 통신장치와 무관하게 존재해 왔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컴퓨터 내부의 통신도 하나의 통신이며, 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진보되어 왔을지라도 큰 흐름의 통신과 컴퓨터는 서로 다르게 발전해왔던 것이다.
통신장치와 관계없이 발달을 거듭한 컴퓨터는 정보처리 기술의 발전에 따라 통신회선에 연결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원초적인 통신의 개념을 극복하여 받아들인 통신내용을 가공하고, 중계하고, 다른 미디어를 통해 들어온 정보와 통합하여 보존하는 기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결국 컴퓨터와 정보통신간 ‘온라인’이 실현됨으로써 양자는 밀접한 관계를 이루게 되었고, 정보통신장치에 컴퓨터의 특성이 적용되어 그 효용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교환기의 교환체계는 먼저 전화가입자가 수화기를 들게 되면 0.5초 간격으로 가입자를 감시하는 컴퓨터가 그 신호를 감지한다. 이어 정해진 프로그램에 의해 발신음을 내보내고, 그 가입자가 어떤 부가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가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자료를 검색한다. 이어 상대편 전화번호가 입력되면 이미 저장되어 있는 루트데이터를 활용하여 상대국으로 펄스를 전송시켜준다. 상대가 전화를 받게되면 발신자에게 응답신호를 보내주고 그때부터 과금을 수행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위적인 회선의 배치에 따른 한정된 교환이 아니라 유연하고 능동적인 호처리와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컴퓨터가 전송장치와 결합되어 전송신호를 부가장치 없이 교환기에 수용하고 중계할 수 있게 되어 더욱 신속하고 유연한 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개인용 휴대전화의 경우에도 단말기 자체에 컴퓨터를 내장시켜 인터넷의 이용 등 다양한 기능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통신처리’와 ‘정보처리’의 통합은 서비스측면에서 매우 다양성을 부여하고 있다. 컴퓨터와 팩스를 접속시키는 ‘미디어 교환’과 하나의 입력정보를 동시에 다수의 상대에게 송신하는 ‘동시 통신’ 서비스 제공 등 한마디로 제공 서비스에 대한 지능을 부여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제약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새로운 천년, 인류는 컴퓨터와 통신의 융합을 이룩하면서 새로운 문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새로운 천년은 그 시작부터 테러와 전쟁 등으로 회색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힘없는 조직의 한(恨)은 비행기로 건물을 무너트리고 일부의 사람들을 죽게 하지만, 강자의 한은 인류전체를 회색동굴 속으로 함몰시킬 수 있다. 때문에 새로운 천년에 인간세상이 좀더 평화로워질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새로운 천년에도 정보통신은 컴퓨터와 융합되어 어떠한 형태로든 인류진화 과정에서 인류와 함께 하고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 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