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3 대 26.4, 93.4 대 20.7’
어느 학급의 우등생과 꼴찌 학생의 평균 점수를 비교한 것처럼 보이는 이 수치는 다름 아닌 10대 청소년과 50대 이상 노년층의 PC 및 인터넷 이용률을 나타낸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PC와 인터넷이 확산되고 있지만 세대간 정보격차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정보문화센터가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대와 20대의 경우 각각 96.3%와 88%가 PC를 이용하지만 40대는 59.2%, 50대 이상은 26.4%로 고연령층일수록 이용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이용률에서도 10대 93.4%, 20대 84%인데 반해 50대 이상은 20.7%에 불과했다. 이는 7∼13세에 해당되는 초등학생들도 74.5%의 이용률을 보인데 비해서 턱없이 낮은 수치다.
세대간 정보격차는 단순히 정보기기 이용률에서만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과 노년층은 숙련도 측면에서도 많은 격차를 보이고 있다.
연령별 컴퓨터 통신 및 인터넷 활용능력 조사결과 10대와 20대는 ‘보통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75.8%와 67.4%에 달했지만 50대 이상은 38.7%에 그쳤다.
이러한 세대간 정보격차는 단순히 노인들의 정보기기 비활용으로 인한 불편함을 넘어서 세대간의 단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급속한 사회 변화로 가뜩이나 적응에 힘들어하고 있는 노인들에게 PC와 인터넷이라는 또하나의 장벽이 놓여져 젊은 세대들과의 괴리감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정보격차 문제는 해결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세대간 단절을 회복하기 힘들 것으로 우려돼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세대간 정보격차의 원인=이처럼 고연령층일수록 정보화 수준이 뒤떨어지는 데는 정보 인프라 부족 및 사회의 관심 결여가 주된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1가구 1PC’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가정의 PC는 사실상 10대 자녀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 자녀들의 학습용으로 PC를 구입하다 보니 노인들은 이를 쓸 때마다 눈치를 봐야 하는게 현실이다.
노인들을 위한 정보화 보조 기구가 부족한 것도 노인 정보화를 가로막는 걸림돌 중 하나다. 시력 약화로 인해 책이나 신문도 보기 힘든 노인들이 모니터 화면의 작은 글씨를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손떨림 증세가 있는 노인들의 경우는 자판을 두드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마우스를 조작하기도 어렵다.
인프라 측면에서 또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노인들을 위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막상 힘들게 PC와 인터넷 활용법을 익혔더라도 특별히 즐길만한 것이 없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온통 젊은층을 위한 사이트 아니면 음란 사이트뿐이다. 그나마 몇몇 안되는 노인용 사이트도 대부분 건강과 관련된 것에 한정돼 있다보니 기껏 배운 인터넷 활용법을 그대로 썩히는 경우가 많다.
세대간 정보격차가 심화된 배경에는 사회적 무관심도 영향이 크다.
대부분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PC를 배워서 뭐할까’ 하는 인식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정보격차 관련 공청회. IT업계의 대표로 참석한 한 패널은 말 한마디땜에 그날 참석한 고령의 노인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무심코 자신도 고령의 아버님이 계시지만 PC를 가르쳐드리려고 해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PC가 필요없는 것 같다고 했다가 낭패를 본 것.
그 고령의 참석자는 “상당수의 노인들이 PC를 배우길 원하지만 막연히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며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권한다면 배우려고 하셨을 것”이라고 패널을 힐책했다.
◇세대간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움직임=하지만 최근들어 세대간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일부에서나마 전개되고 있어 위안이 되고 있다.
노인 정보화와 관련해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지난 2000년 7월부터 3만명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정보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실버넷운동본부’. 이 단체는 단순히 3만명이라는 정보화 교육 실적뿐 아니라 그동안 정보화의 음지에 남아있던 노인들을 정보화 세상으로 끌어내는데 많은 기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노인들의 정보화 인식 개선과 함께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노인 정보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도록 한 점도 성과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현재 실버넷의 정보화 교육 강사는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가장 많다.
노인들을 위한 콘텐츠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건강 사이트 위주에서 벗어나 바둑·장기처럼 노인들이 즐길 만한 게임사이트도 생겨나고 노인들의 정보화를 돕기 위한 PC활용 사이트도 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일부의 변화가 세대간 정보격차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준은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인 정보화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며 아직 PC를 구경조차 못한 노인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세대간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정보처리학회의 정진욱 회장은 “세대간 정보격차 해소는 정보 인프라 보급과 함께 범사회적인 관심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정보격차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모든 이들을 정보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려는 각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정태명 실버넷운동본부 운영위원장
"세대간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보화에서 소외되기 쉬운 노인들을 대상으로 정보화 교육을 활성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대간 정보격차 해소 노력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실버넷운동본부(http://www.silvernet.ne.kr)의 정태명 운영위원장은 노인들의 정보화 의지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을 뛰어넘는다며 노인 정보화 교육 활성화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노인들이 PC를 다루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정보화 수준이 뒤처지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보화에서 뒤처지면 젊은 세대들과 문화를 공유하기가 더욱 힘들어져 정보화 차원뿐 아니라 가정·사회 등에서도 고립돼 이중으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는 게 정 위원장의 설명이다.
정 위원장은 “교육 과정에서 만난 노인분들 중 상당수가 세대간 단절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노인 정보화는 세대간 정보격차 해소와 함께 세대간 문화 격차 및 대화 단절을 막는데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아직 노인 정보화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적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개선돼야 할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대기업들이 앞장선다면 한층 더 쉽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텐데 기업들이 상업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보다 보니 아직 노인 정보화 보조 기구 같은 기본적인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우선 세대간 정보격차 문제에 대한 관심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단순한 정보격차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정부·기업·학계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노인정보화모임 `노클럽`
‘할아버지, 할머니는 PC를 못한다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노인들의 정보화 소외 현상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동호회를 결성, 정보화 수준 향상은 물론 친목 도모까지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는 곳이 있다.
경기도 군포시에 거주하는 55세 이상 노인들로 구성된 ‘노클럽(http://www.freechal.com/noclub)’. 노클럽은 지난 2000년 군포시의 노인정보화 교육과정을 수료한 8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노인 정보화 모임이다.
첫 모임때는 회원이 20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회원수가 80명이 넘는 어엿한 온오프라인 동호회로 성장했다.
정보화 교육도 처음에는 단순히 한 과정밖에 없었지만 최근에는 컴퓨터기능 외에 디지털카메라반도 개설됐으며 수준별로 반을 편성, 교육의 효율화도 꾀하고 있다.
노클럽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석규 할아버지(70)는 “처음에는 교육과정 수료 후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모인는 소규모 친목모임이었지만 지역 노인들이 워낙 열성적으로 참여해 지금은 지역내에서 유명세까지 치를 정도”라고 흐뭇해했다.
김 할아버지는 “정보화를 통해 치매 예방은 물론, 무료한 일상에서 활력을 찾을 수 있고 자칫 느끼기 쉬운 소외감도 극복할 수 있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혜택을 함께 누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할아버지는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어 매주 장소를 빌려서 교육을 하는 등 어려움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라며 노인 정보화에 대한 관심이 널리 확산되길 기대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