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꽃피울 것이라는 IT의 환상은 사라졌는가.
새천년을 맞으며 우리는 지식정보화가 전세계에 뿌리내리고 모든 사람이 번영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밀레니엄이 오면’ 정보통신기술이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고 우리나라가 지식정보화사회의 주역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2001년 세계경제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자본주의의 대부’ 미국에서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그 파장은 세계적으로 확산됐고 우리 경제도 큰 타격을 맞게 됐다.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줄 것이라 믿었던 IT산업도 위기상황을 맞았다. 정말 IT는 사라졌는가. IT분야 경기침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정보통신기술의 과잉투자가 핵심요소라고 지적한다. 정보통신분야 과잉투자와 함께 과잉소비가 일어났고 이런 ‘거품’이 궁극적인 경기침체를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를 근거로 하면 98년 이후 정보통신분야에서 연평균 22.6%의 경제 성장률을 지속하는 우리나라는 분명 과잉투자 국가다. 총부가가치액에서 정보통신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도 10.7%나 돼 정보대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이 8%, EU 전체 6.4%에 비교하더라도 높다. 우리 경제여건을 감안하면 엄청난 과잉투자다. 정보통신분야에서 경제회생의 길을 찾겠다던 정부는 경제실패라는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
더불어 우리는 마땅히 경기침체 주범으로 IT산업을 꼽아야 한다. 경기회복, IMF 국난극복의 영웅으로 칭송되던 벤처기업, 대기업 종사자들은 국내 경기를 좀먹는 불한당이 돼야 한다.
정보화를 거품경기의 주범이 몰아붙이기에는 우리의 지난 5년이 너무 씁쓸하다. 국내에 일기 시작한 정보화 열기는 길어야 10여년. 국내 정보화는 고작 네트워크 구축과 단말기, 시스템 보급이 이뤄지기 시작한 수준이다. 장비와 네트워크만 가졌지 제대로 한번 써보지 못한 상황이다. 정보화는 정보단말기와 네트워크 구축보다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보화가 생산성으로 이어지려면 인적자원에 대한 교육, 정보기기, 네트워크의 활용도를 높이는 각종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인터넷, 고도로 지능화된 이동전화단말기, 프로게이머를 보유했다고 정보화가 완결된 것은 아니다. 미국이, 혹은 EU를 우리보다 정보화에 앞선 나라라고 평가하는 것은 해당 정보기기를 이용해 어떤 정보를, 어떤 경로로, 어떠한 사고로, 어떻게 운영하느냐, 즉 ‘숙련도’에 앞서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이들 국가의 정보화가 높은 수준은 아니다. 이들도 아직 정보화를 준비중일 뿐이다.
그간 우리나라 정보화는 네트워크 구축에 비중을 두고 진행됐다. 이를테면 지능화된 통신망이 건설되고 단말기가 보급되는 이른바 양적인 확산시기였다. 양적 확산시기에는 단말기,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와 구입이 주를 이룬다. 직장과 가정이 PC를 구입하고 이동전화단말기를 구입하고 공장자동화 프로그램, 정보교류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과정이 전부였다. 어떤 프로그램, 솔루션, 비즈니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른바 정보화에 대한 ‘요리과정’은 전무했다.
현재 IT산업이 다소 침체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네트워크, 단말기, 프로그램 보급이 이뤄지면서 준포화상태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초고속인터넷, 이동전화단말기, 각종 소프트웨어, 통신시스템 등은 국내 시장에서 소화할 만한 양적 확산이 일어난 상황. 이를 위한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내든지 아니면 새로운 질적 도약을 이룩해야 한다.
분명 IT산업은 양적 확산정책에서 질적 도약의 수준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주변에 공단, 농업부지, 상업지구, 항만 등이 연계되려면 수십년이 걸린다. 통신네트워크를 매개로 한 정보화 역시 자리를 잡으려면 적어도 수년, 수십년의 제도와 조직의 혁신을 위한 기간이 필요하다. 정보화가 국내산업을, 세계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상당기간 시차를 두고 효과가 나타난다. 이제 우리 IT산업은 다양하고 세분화된 IT주변산업, 전후방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