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시장 빅뱅>(5/끝)빅뱅에서 살아남기

 지난 20일 아침 메리어트호텔. 국내 반도체산업을 이끄는 핵심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과 주요 업체 대표간의 정책 간담회였다.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협상은 진행중인 사항이므로 오늘 언급하지 맙시다.” 신 장관의 모두 발언을 듣는 참석자들의 마음은 착찹했다. 반도체 빅뱅의 시발점이며 세계 반도체산업계의 핫이슈를 정작 국내에선 안건으로도 올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그만큼 한국은 반도체 빅뱅의 한복판에 서있다. 빅뱅의 결과에 따라 한국 반도체산업은 몰락할 수도 재도약할 수도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IMF 한파가 우리 경제의 고질을 들춰냈듯이 하이닉스 협상은 국내 반도체산업의 문제점을 새삼 되돌아보게 만든다.

 비메모리반도체의 취약성은 고질적인 문제다. 하이닉스는 메모리를 매각하고 남은 부문에 빚만 털어낸다면 비메모리분야의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하나 상당수 전문가들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TSMC와 같은 대만의 파운드리업체와 견줄 정도로 성장시키려면 집중적인 기술투자도 이뤄져야 하며 인력도 양성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비, 재료, 부품 등 기반산업도 취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도 해묵은 것이다. 지난 20일 간담회 자리에서 업계 대표들이 정부에 건의한 △세제개선 △전문인력 양성 △연구개발 지원확충 등은 하이닉스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 1년 반 전에도 나왔다.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을 해마다 지적하니 입만 아프다”며 업계 관계자들은 푸념한다.

 아무 것도 없던 시절 “반도체산업을 기간산업으로 육성하자”며 민관이 힘을 모으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도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대안은 분명 있다=하이닉스 매각을 지켜보는 국민 사이엔 국내 메모리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이 없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는 불황속에서 오히려 점유율을 대폭 향상시켰다. 마이크론도 어떻게든 하이닉스를 손에 쥐려 한다. 하이닉스의 위기도 경쟁력 상실 자체보다는 그릇된 금융문제에서 비롯됐다. 국내 메모리산업은 여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비메모리분야도 삼성전자의 집중육성과 아남반도체와 동부전자, 하이닉스의 가세, 설계와 장비전문 벤처기업의 잇따른 탄생 등으로 새로운 움이 트고 있다.

 물론 선진 업체와의 격차는 현격하나 일단 시동이 걸렸으며 이젠 가속 페달을 밟으면 된다.

 하이닉스의 매각도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한다. 비록 기술 상당수가 마이크론에 넘어가나 라인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마이크론 외의 미국 비메모리반도체업체의 투자가 잇따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인력도 양성되고 산업의 토양은 더욱 풍부해진다.

 특히 중국이 최대 반도체시장으로 도약하는 것을 활용해 한국을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만들려는 슬기가 필요하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우리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하면서 달라진 산업 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옷(반도체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최근 산자부가 마련중인 반도체산업 육성전략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빅뱅과 같은 격변기엔 확실한 강점을 갖고 있어야 살아남는다. 우리 반도체산업은 공정기술이라는 확실한 카드를 가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공정기술을 바탕으로 설계기술과 장비·재료기술 등 취약한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면 우리 반도체산업은 10년 뒤엔 오히려 더욱 위력을 떨칠 수 있다”고 말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