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금융거래 기본법 제정 왜 늦춰지나

 ‘마그네틱 선불카드 형태의 백화점상품권을 신종 전자화폐에 포함시켜 규율해야 하나. 온라인 전자화폐사업자의 지불준비금제도는 어떻게 둬야 하나.’(전자화폐 관련규정)

 ‘기업간 거래의 지불수단인 전자외상매출채권에 양도성을 부여해 사실상 어음의 기능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 전자채권 활성화 차원에서 세제혜택이나 한국은행 총액한도대출 대상에 어느 정도 포함시켜야 하나.’(B2B 지급결제수단 관련규정)

 ‘통신사업자들의 지불결제서비스를 어디까지 제한해야 하나. 전자금융서비스 사업자의 인허가 요건과 주관 부처는 어디로 할 것인가.’(전자금융 감독 및 검사 관련규정)

 지난해 민주당과 범정부 차원의 의지에 힘입어 법제화 작업을 처음 시작했던 ‘전자금융거래에 관한 기본법’이 4개월이 다 돼도록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협의를 해도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쟁점들이 속속 불거지는데다, 법제화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관계부처간의 이견도 여전하다. 하지만 ‘뜨거운 감자’겪인 이 논란들은 이미 법제화 착수 당시부터 예견된 사안이어서 지연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는 시각이 많다.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아직 초안조차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제화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입법의 필요성과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솔직히 주변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근 일각에서 현 정부 임기내 법제화가 힘들다는 관측이 대두되는 것도 이런 정황에서다.

 ◇경과 및 배경=전자금융거래기본법은 지난 수년간 전자상거래(EC) 관련 핵심 법제로 입법의 필요성이 거론돼 왔던 사안. 그동안 시기상조라는 입장으로 일관해왔던 재경부는 지난해 하반기 민주당이 관련 법령 일제정비 작업에 착수하면서 올 2월 임시국회 상정으로 갑작스럽게 선회했다. 당시 정보통신부와 민주당 곽치영 의원이 전자결제 관련법안을 먼저 들고 나왔던 탓이다.

 이때부터 재경부는 정통부·한국은행·금감위·금융결제원·금융연구원 등과 공동으로 △전자자금이체 당사자간 법률관계 △B2B·B2C 전자결제수단 △전자화폐·PG·디지털상품권 등 전자금융업 △전자금융 감독 및 검사 △소비자보호 등 세부분야별로 작업반을 구성해 시안 마련에 착수했다. 법률 1차 시안을 내기로 당초 약속한 시한은 지난해 11월말. 하지만 지금까지도 작업반별로 몇차례 회의만을 가졌을 뿐 눈에 띄는 진척은 없는 실정이다. 작업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수차례 회의가 있었지만 법안 제정의 필요성 등 원칙적인 부분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었다”면서 “지금까지는 각자의 이견을 확인했던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처럼 법제화 작업이 늦춰지는 데는 주무부처와 관계기관들의 조심스런 눈치보기가 강하게 깔려 있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쟁점사안들에 섣불리 접근할 경우 여론과 업계의 반대가 불 보듯 뻔한 데다 향후 책임문제도 거론될 공산이 있다. 게다가 뚜렷한 의지를 보였던 민주당조차 상반기부터 선거체제에 돌입하는 등 지속적인 관심을 갖기 어려운 형편이다. “우리로선 전자금융기본법의 규율 영역을 최소화해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 뿐 입법여부는 모른다”는 재경부의 소극적 자세는 이런 배경에서다.

 ◇전망=업계와 전문가들은 각종 사안에 묻혀 전자금융거래기본법 제정작업이 계속 지연될 경우 결국 무산될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은행·증권·보험 등 각종 전자금융서비스가 대중화단계에 들어서고, 기존 금융권은 물론 정보기술(IT)업계와 이동통신사업자들의 시장진입도 점차 거세지는 상황에서 산업적 혼란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자금융이라는 신시장에서는 새로운 준거가 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초안이라도 빨리 나와 광범위한 의견수렴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표 <전자금융거래기본법 당초 추진일정>

 2001년 10월 22일 민주당 ‘전자거래 활성화를 위한 법령정비 정책기획단’과 당정협의 통해 재경부 통합 입법 합의

 2001년 11월 30일 전자금융거래기본법 시안 마련

 2002년 2월 이전 공청회·입법예고·당정협의

 2002년 2월 임시국회 법안 제출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