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내기식·주먹구구식 판매방식에 의존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완성차업계에 고객관계관리(CRM) 도입바람이 불고 있다.
포화상태에 다다른 내수시장에서 자동차 신규 구매보다는 신차 교체구입 고객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완성차 메이커에 대한 브랜드 충성도가 구매로 직결되는 최근의 상황에서 CRM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으로 등장하고 있다. 5대 완성차 업체들은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올해 기존 영업전략을 혁신할 수 있는 핵심과제로 CRM 구축 및 고도화를 삼고, 본격적인 활용에 들어갈 계획이다.
◇추진현황=현대자동차는 이달 들어 사내 마케팅실 내에 CRM팀을 신설하고 올해부터는 통합 CRM 환경의 본격적인 활용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영업부서와 고객센터 등으로 분산됐던 고객데이터와 정보채널을 완전 통합한 ‘신고객데이터베이스(DB)’와 ‘캠페인시스템’을 다음달까지 구축 완료하기로 했다. 통합DB로 구축될 고객규모는 우선 기존 고객 550만여명이며 연내 현대카드의 170만 고객도 모두 수용키로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비·상담·출고 등 각종 차량이력에서 취합되는 고객정보를 통합한 환경으로 재정비될 것”이라며 “종전과 완전히 달라진 영업·마케팅 관행이 만들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통해 오는 4월부터는 우수고객용 맞춤정보서비스, 중고차·할부금융·보험 등 일괄서비스를 선보이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현재 준비중인 텔레매틱스 서비스와도 연계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올해 CRM 정착을 위해 그 활용정도에 따라 직무별 성과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등 전사적인 차원에서 제도화하기로 했다. 기아차는 지난달 일선영업조직과 인터넷, 콜센터 등에 분산됐던 자사 500만 고객데이터를 통합 완료한데 이어 현재 CRM 도입에 앞선 마스터플랜을 수립중이다. 기아차는 늦어도 상반기까지는 장기계획을 도출해 조직개편에 반영할 예정이다.
지난해 이후 활발한 인터넷 마케팅을 전개해온 대우자동차는 기존 고객과 100만명의 ‘서포터’ 회원을 대상으로 상반기 중 휴대폰 단문메시지(SMS) 서비스를 선보이기로 했다. 이를 통해 온라인 마케팅의 근간인 eCRM 환경을 재정비하는데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르노삼성차도 최근 ‘동의합니다’ 마케팅 캠페인을 통해 가입한 5만여 회원과 기존 15만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올해는 통합 CRM시스템 구축에 역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설계를 거쳐 최근에는 영업조직·인터넷·콜센터 등 고객정보의 통합시스템 개발에 착수하는 한편, 특히 올해는 e메일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다.
쌍용차는 현재 특별전담팀(TFT)을 구성해 CRM 도입을 위한 컨설팅을 진행중이다. 쌍용차는 다음달까지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뒤 기간계시스템에 산재된 고객정보 통합, 컴퓨터통신통합(CTI) 도입, 웹서비스 보강 등 다각적인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다.
이처럼 진척속도와 고객범위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최근들어 완성차 업계의 CRM 도입은 공통된 추세로 드러나고 있다.
◇왜 CRM인가=CRM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돼 왔던 유통·금융업종과는 구별되지만 완성차 업계에서 CRM이 갖는 의미 또한 각별하다. 일대일 마케팅을 통한 실거래 유도라는 근본적인 목적은 같지만 유통·금융업종은 당장 고객들의 거래 유인에 초점을 둔 반면, 자동차 업계는 자사의 브랜드 충성도를 향상시키는데 우선적인 목적이 있다. 대량 거래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타 업종과 달리 자동차는 구매사이클이 통상 5년 정도로 비교적 장기간이기 때문이다.
대우자동차 김기호 차장은 “한번 구입한 고객이 차를 움직이는 동안 메이커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결국 재구매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라며 “CRM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더욱이 내수시장은 최근 몇 년 새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신규 구입보다는 교체구입 비중이 절대적인 상황이고, 판매 이후 정비·폐차에 이르는 소위 애프터마켓 시장도 놓칠 수 없다. 그동안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현대자동차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지난 수년 전부터 CRM에 눈을 떠 꾸준히 준비해온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