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쟁력이다>(8)지방기업 인력난으로 고사상태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나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속담에 충실해서 그런지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에는 무려 1000만명이 모여 있다.

 산업과 금융, 교육, 문화의 모든 자원과 기회들이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문화적 삶과 직장생활을 지속하기가 어렵다. 지방에는 기업 생태계적 순환 고리인 벤처캐피털·벤처정책·인력교육시스템·컨설팅시스템 등이 없거나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또 모든 경제의 주체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고 결정이 이뤄지다 보니 지방기업은 며칠 또는 몇 달 후에 정보를 얻게 되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상황은 지방기업을 서울에 위치한 업체의 대리점이나 하청업체로 전략하게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지방에서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이 쓸 만한 인력이 없다는 점이다. 기업을 이끌어가는 전문 경영인은 물론이고 연구개발자도 턱없이 부족해 인력을 찾아 헤맨다는 게 지방기업 대표들의 하소연이다.

 광주에 위치한 소프트웨어 전문업체 김정기 다우시스템 사장은 “우수한 인재가 대부분 수도권에 모이는 것은 지방에서 더 배울 것이 없다는 인식 때문”이라며 “우수한 인력이 떠나가는 것을 기업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지방벤처 기업에서 만들어진 제품의 성능이나 질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다”며 “지방에서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도 지방 인력으로 그런 정도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김 사장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0들은 기업 생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연구인력 수급을 위해 수도권으로 회사를 옮겨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린다. 지방 기업들 가운데 그나마 인력 수급 현황이 다른 지방보다 나은 대덕밸리에 위치한 전자부품제조업체 코아텍은 최근 고급 수준의 연구인력을 확보하려고 경기도 분당으로 연구실을 옮겼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지방에서 인력을 확충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는 코아텍의 양상석 사장은 “소수의 기술 인력에 의존해 회사를 꾸려가는데 전전긍긍하다 연구소를 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토로했다.

 공채를 통해 회사 내 인력을 한번도 모집해 본 적이 없다는 양 사장은 지방에서 일하겠다고 내려오는 경력직 사원의 대부분은 기존 기업에서 퇴출당했거나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가진 연구자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높은 임금을 준다고 해도 지방에서 경력을 쌓는 것은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수도권 기업에 취업하는 겁니다.”

 VoIP 프로그램 개발자인 M연구원은 대전이나 부산에서 3000만원 이상의 연봉에 기숙사까지 제공하는 조건보다 서울에서 낮은 임금으로 일하는 편이 경력에 도움이 된다며 지방기업에 취직할 뜻이 전혀 없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지방 소재 벤처기업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전통제조업 공장과 연구소들은 지방에 산재해 있다. 그곳도 연구인력과 생산직 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수출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와 철강·조선 등 국내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전통 제조 기업들은 사양 산업이라는 인식과 지방이라는 한계까지 더해 수출전선에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지방에 위치한 연구소도 인력난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한국광기술원과 고등광기술연구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광주전남 연구센터 등 광(光)관련 신생 연구기관은 전문 인력을 구하지 못해 연구개발 사업 착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는 2003년까지 모두 55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한 한국광기술연구원은 그동안 수시모집으로 12명을 채용했으나 채용된 연구원의 대부분이 자발적 지원보다는 아는 사람을 통한 스카우트가 대부분이라고 광기술원은 설명했다.

 광주과학기술원 부설 고등광기술연구소도 소장을 겸직하는 교수급 연구원 한 명만 확보했을 뿐 실무 연구원을 채용하지 못해 개소 5개월이 지나도록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TRI 광주 전남 연구센터는 하반기부터 광통신시험시스템 구축 등 대형과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나 전문 인력이 없어 묘연한 상태다. 앞으로 45명의 연구인력을 채용할 예정인 이 연구소는 현재 9명의 연구원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대학이나 타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는 인력과 비정규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문제를 고려 중이다.

 이경수 대덕밸리벤처연합회 회장은 “지방기업들은 심지어 중앙 정부 부처에서 나오는 연구과제 공고 정보에서도 소외된다”며 “지방 기업을 살리려면 범정부적인 지방 기업 육성책과 수도권 집중화를 막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방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인력 수급 문제는 각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노동청 등 관련 기관을 서로 연계해 지역 특성에 맞는 인재의 육성·개발·관리·활용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