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을 먹느라고 혈압약을 며칠 안 먹었어요.” 잘 조절되던 혈압이 올라간 것을 탓하는 내 눈빛에 겸연쩍게 말하는 환자의 궁색한 변명이다. 그러나 차마 말 못하고 답답하지만 약물상호작용을 본능적인 자위책이려니 하고 이해해 줄 수밖에 없다.
단순히 혈압만 높은 고혈압환자는 드물다. 대다수가 몇가지 위험인자와 동반질환을 갖고 있으며 몇달, 몇년이고 혈압약을 먹다 보면 감기몸살이나 배탈 없이 건강하기만 할 수는 없다. 또 고령의 고혈압환자들은 합병증이나 병발증 등을 갖고 있어 여러가지 약을 동시에 복용하고 있다. 다만 단기간의 투약으로 끝나는 경우는 별 문제가 없으나 장기간 복약해야 하는 만성질환일 때는 문제가 생긴다.
강압제의 흡수·대사 및 배설에 영향을 주고 받는 동시복용약의 상호작용으로 강압효과에 변동이 생기고 부작용도 출현하기 때문이다.
위궤양약을 병용하면 간약물대사 효소가 억제돼 베타차단제나 칼슘길항제의 농도가 상승, 과도한 강압과 부작용이 증가한다. 반면 흡착제나 제산제·식물섬유 등은 약물흡수 장애로 혈중농도가 낮아져 강압효과가 떨어진다. 관절염이나 신경통에 쓰는 소염진통제는 대부분 강압효과를 떨어뜨려 혈압이 올라간다.
강심제를 장복하고 있는 환자에게 이뇨제나 칼슘길항제를 주면 신장에서 약물배설이 감소해 혈중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자칫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협심증으로 니트로글리세린제제를 복용하는 환자는 모든 강압제에 의해 혈압이 너무 떨어질 수 있어 용량조절이 필요하다.
당뇨병이 있는 고혈압환자에게서 베타차단제나 이뇨제는 인슐린 저항성을 증대시키고 저혈당 증세를 은폐하므로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며, 안지오텐신 전환효소억제제는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해 지질대사에는 도움이 되지만 저혈당을 일으킬 수 있다.
한약 조제시 많이 사용하는 감초나 피부병·관절병의 특효약으로 남용되는 스테로이드 사용환자에게 이뇨강압제를 사용하는 경우 심한 저칼륨혈증을 일으켜 부정맥을 유발할 수 있다.
저용량 아스피린은 별 문제가 없으나 감기나 류마티스 등에 대량으로 쓸 때는 이뇨제의 효과를 줄여 혈압이 올라가는 수가 있으며 출혈경향에도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