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엽은 승부사다. 또 자신의 선택을 책임진다.
“이제 재무 담당자로 남아야죠. 회사경영은 박정대 사장, 이성규 사장, 송문섭 사장이 있지 않습니까.”
팬택 창업자이자 현대큐리텔 인수자인 박병엽 부회장(40)이 또다른 모험을 시작한다. 팬택(대표 이성규 http://www.pantech.co.kr)을 창업한 지 10년여만에 자산 3500억원, 매출 3860억원, 순이익 80억원의 우량회사를 만들어 놓더니만 2001년 11월 다시 한 번 개인재산을 털어 현대큐리텔(http://www.curitel.com)을 인수했다. 그리고는 회사의 돈보따리(재무)를 책임지겠단다.
팬택과 현대큐리텔은 자산 6000억원, 매출 1조3000억원, 순익 280억원의 대형기업이다. 더욱더 경영일선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박 부회장은 초심으로 돌아갔다. 또 임직원들을 신뢰하고 있었다.
“팬택과 현대큐리텔 임직원들의 능력에 많이 놀라고 있습니다. 탄탄한 연구개발진, 탁월한 시장분석 능력을 바탕으로 회사의 비전을 시기별로 제시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박 부회장은 최근 임직원들이 제출한 보고서에 고무돼 있다. 실제 기자의 눈으로 확인한 그 보고서에는 시기별, 상황별, 변수별로 조목조목 목표치가 설정돼 있었다. 박 부회장은 처음 보고서를 대했을 때, 임직원들의 과욕일 듯 싶어 “목표의 절반만 이루어줬으면…”하고 바랐단다. 하지만 지금은 목표를 초과할 것으로 믿게 됐다.
창업비용 4000만원,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월세 사무실. 1991년 박 부회장의 출발은 초라했다. 그것도 경기 부천에 마련한 10평짜리 가족 보금자리(연립주택)를 저당잡히는 도박을 감행했다. 자금흐름이 어려워지면 10만원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기억도 있다.
무선호출기를 주력품목으로 삼아 잡초 창업사를 겪은 그가 이제 자산 6000억원짜리 회사(팬택+현대큐리텔)의 재무를 책임진다. 이는 회사의 버팀목으로 남아 있되 경영은 전문인들에게 맡기겠다는 뜻.
그렇다고해서 박 부회장의 시선과 몸이 회사 밖으로 나돌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그의 2002년도 화두에는 ‘팬택과 현대큐리텔의 시너지 창출’이 포함돼 있다.
박 부회장은 ‘강력한 오너십’이라는 채찍을 발휘, 팬택과 현대큐리텔의 통합 구매를 시작했으며 연구개발·마케팅·지원부문도 한 살림으로 묶을 계획이다. 이동전화단말기 연간 생산능력 1300만대(팬택+현대큐리텔)에 기반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다.
이미 해외 핵심부품 공급업체들과 이동전화단말기 판매기업들의 팬택·현대큐리텔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상황이다.
“한국의 이동전화단말기 제조업계는 2개사로 압축될 것입니다.”
이동통신기기 외길을 걷는 박 부회장의 예측이다. 팬택·현대큐리텔의 미래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야말로 경쟁사들의 모골을 송연케하는 자신감이다.
그 자신감을 뒷받침할 장수(전문경영인)들도 만만치 않은 인물들이다. 팬택에 대기업형 관리체계의 기틀을 다진데다 현대큐리텔 재기일선에 뛰어든 박정대 사장(57)은 LG정보통신(현 LG전자) 이동단말사업부문 수장이었다. 연구개발 총괄 책임자인 이성규 사장(49)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연구개발 분야의 맏형으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연구통이다. 송문섭 사장(50)도 삼성 회장비서실 기술담당, 삼성전자 정보가전총괄 스토리지부문 전무, 현대전자산업 통신사업부문장을 거친 전문 경영자다. 박 부회장은 자신이 조성한 안정적인 환경(재무)을 토대로 팬택, 현대큐리텔 임원들의 ‘튀는 경영’을 기대하고 있다.
이미 팬택·현대큐리텔은 국내 이동전화단말기 제조업 3강 반열에 올라섰다. 규모면에서 LG전자에 버금간다. 또 팬택이 모토로라로 7억달러(1년6개월), 현대큐리텔이 오디오복스로 7억3000만달러(1년) 상당의 대형 공급계약을 따낸 상태여서 미래도 밝혀 놓은 상태다.
특히 오디오복스는 매년 500만대 이상의 CDMA 단말기 공급계약을 추가로 체결하기로 약속, 현대큐리텔의 앞날에 청신호를 켰다.
이동통신 최대 어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도 눈에 띄는 실적이 이어지고 있다. 팬택이 중국 닥시안, TCL, 소텍, 닝보버드 등과 200만대 이상의 CDMA 및 GSM 단말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현대큐리텔도 최근 인도, 루마니아에 진출한 데 이어 중국에 연산 200만대 수준의 현지 합작생산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박 부회장은 97년 일본 NHK가 뽑은 ‘아시아의 뉴리더’다. 99년은 한국을 대표하는 6명의 경제인으로 선정돼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얼굴을 마주하기도 했다. 영화 ‘친구’에 등장한 힘있는(?) 친구였던 그가 벤처 성공신화의 대표주자로 우뚝 선 것이다.
그의 벤처경영 스토리도 영화처럼 재미있다. 세계 유명 이동통신기기 제조사인 모토로라로부터 자본(지분율 19.9%)을 끌어들이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라는 핵우산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대등한 줄다리기를 이어왔다.
실제 모토로라는 어필텔레콤과 함께 팬택에 대한 인수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부회장은 모토로라의 제안을 외면했다. 이같은 모토토라와의 대등한 밀고 당기기는 이동전화단말기 제조기술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게 박 부회장의 설명이다. 이로써 팬택은 모토로라 하청기업이 아닌 동반자로 자리매김했다.
모토로라와의 관계는 현대큐리텔과 오디오복스간 대형 계약에도 큰 힘이 됐다. 박 부회장은 제갈공명이 썼을 법한 전략을 마련하고 모토로라를 끌어들였다. 모토로라가 오디오복스에게 ‘팬택과 현대큐리텔이 전자통신기기 유통 전문업체인 오디오복스를 거치지 않고 버라이존와이어리스나 스프린트PCS와 같은 이동전화사업자와 직접 계약할 수 있다는 변수’를 전하도록 조율한 것.
결국 오디오복스 고위 관계자가 서울로 날라와 박 부회장을 찾았고, 계약물량이 300만대에서 500만대로 늘어났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매년 계약을 500만대 이상씩 갱신할 수 있는 적지않은 덤도 확보했다.
올해 박 부회장의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한다. 갑자기 “아들에게 초등학교 6년간의 감회를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아들, 아니 가족에게 마음으로만 애틋한 사람이다. 벤처 싸움꾼으로서 치열한 생존경쟁의 길을 걸어오다 보니 가족들로부터 0점짜리 성적표를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박 부회장은 반성한다. 하지만 이미 0점짜리 아빠의 길(현대큐리텔 인수)로 다시 들어섰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 덕분에 2000여 팬택, 현대큐리텔 임직원들의 삶이 즐거워지고 우리나라 이동통신 장비산업이 발전하는 것 아닐런지.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80년 중동고 졸업 △85년 호서대 경영학과 졸업 △87년 맥슨전자 입사 △91년 팬택 설립△92년 통신기술개발 공로표창 수상 △98년 최우수 기술경영인상 수상 △2000년 팬택 부회장 △2001년 무역의날 철탑산업훈장 수상 △2001년 11월 현대큐리텔 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