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6)사람잡는 로봇-2

터미네이터는 설득이나 타협이 통하지 않아. 슬픔, 두려움도 모르는 괴물이지.그 놈은 당신을 죽이기 전엔 절대 멈추지 않을 거요.

영화 터미네이터-1

 

 폐허가 된 미래도시에서 사람들이 냉혹하고 무자비한 살인로봇에 쫓겨다닌다.

 한 영웅이 나타나 악당로봇을 모두 때려부수고 결국엔 인류를 구원한다.

 이제 고전이 돼버린 터미네이터류의 SF영화는 대중에게 미래사회의 로봇은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선입견을 주입해왔다.

 영리하고 힘이 쎄진 로봇이 거꾸로 주인을 내쫓고 공격한다.

 제법 섬뜩한 상상력이지만 「사람잡는 로봇」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은 결코 세계인이 공유하는 보편적 감성이 아니다.

 이렇게 기계로봇을 두려워하는 심리는 유럽인종, 그중에도 북미대륙에 사는 앵글로색슨족에 특히 두드러진 문화현상이다.

 지금까지 악당로봇이 사람을 공격하는 영화치고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하지 않은 것이 몇 편이나 되는가.

게다가 로봇에 쫓기는 주인공은 반드시 색슨족 백인이다.

 이처럼 미국사회의 주류 백인계층이 「로봇괴담」에 유독 심취하는 이유는 과거 영국에서 북미대륙으로 이주한 자기 조상들에 대한 원죄의식 때문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에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인간이 기계로봇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리 멀지않은 과거,고향에서 쫓겨난 인디언전사들이 백인기병대와 절망적인 싸움을 벌이는 서부영화와 묘하게 겹치지 않는가.

 색슨족은 북미대륙에 수만년간 살아온 그 땅의 주인들을 거의 멸종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 단지 자신들의 군사력과 지적능력이 원주민보다 앞선다는 이유로 말이다.

 오늘날 북미대륙의 색슨족은 전 지구차원의 우세종으로 성장해 역사상 유래없는 번영과 부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미국 백인계층의 오랜 원죄의식은 가끔 외부세력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과 무차별적인 힘의 과시로 드러난다.

 과거 자기 조상들이 인디언을 학살한 것처럼 어느날 자신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세력이 나타나 지금의 번영을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표현인 것이다.

 외계인이 지구를 공격하는 황당무개한 영화(인디펜던스 데이, X파일 등)나 터미네이터류의 영화가 유독 미국서만 판치는 현상은 다 이유가 있다.

 듣자하니 영화 터미네이터-3가 미국에서 촬영에 들어간다는 소문이다.

 보나마나 9.11 테러영향으로 아랍인을 닮은 터미네이터(빈라덴 로봇?)를 백인영웅이 때려잡는 얘기일 것이다.

영화에 나올 색슨족 주인공에게 미리 해주고픈 말이 있다.

 "난 살인로봇보다 네가 훨씬 더 무서워."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