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법 태풍 몰려온다](1)대책없는 기업들

 

국내 소비자 보호 방면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되는 제조물책임(PL)법 시행은 제조업체 등 기업 입장에서는 또 다른 부담이 아닐 수 없다. PL법 시행을 4개월 가량 남겨 놓은 가운데 기업들의 대응방안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문제점과 PL법 시행 후 나타날 산업 전반의 변화 등을 6회에 걸쳐 점검해 본다. 편집자

 순서

 1. 대책없는 기업들

 2. 마인드부터 바꾸자

 3. PL전문가가 부족하다

 4. 또 다른 숙제들

5. 유통업계도 예외 아니다

 6. PL시대의 소비자역할과 책임

   

 룸에어컨 내부에서 형성된 물방울이 컴퓨터에 떨어져 누전 발생. 소비자의 정보 데이터 소실로 업무에 지장 초래. 소송액 4000만원.

 컴퓨터 프로그램 오류로 인해 식품 제조회사의 매출이 과잉 정산됨. 이로 인해 세금을 과잉 납부해 손해 발생. 소송액 1억원.

 생후 10개월 된 아이 전기포트에 손, 발, 가슴 화상. 피해 부모는 포트가 넘어지기 쉽게 돼 있고 뚜껑이 쉽게 열리는 등 구조와 설계에서 안전성이 결여돼 있고 위험에 대한 경고 표시도 부족하다고 주장. 소송액 2억5000만원. 분쟁조정으로 8000만원에 합의.

 이웃 일본에서 발생한 PL관련 분쟁이지만 이제 먼 나라,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제조물책임(PL:Product Liability)법 시행을 4개월 가량 남겨놓은 가운데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한 소비자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상의 손해에 대해 제조업자가 손해를 배상하는 제조물책임은 제조자의 고의·과실책임(민법)이 입증될 경우 손해를 배상하던 과거와 달리 사건, 사고에 대한 무과실 입증 책임을 기업이 지게 되고 이에따라 책임을 면할 수 있던 사건, 사고도 이제는 막대한 피해보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비자 보호 방면에서 획기적인 일이지만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등 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PL법 시행이 사회와 산업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기업들의 PL에 대한 준비와 인식은 여전히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소기업청이 지난해 11월 3만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PL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기업은 3분의 1 수준에도 못미치는 28.2%에 불과하며 기본적인 PL에 대한 인지도 조사에서도 절반 수준인 52.3%만이 PL에 대해 들어보거나 알고 있다는 정도다.

 중소기업청은 올 3월 재조사에서 그동안 추진해온 정부기관의 PL대응 종합지원책이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둬 대책 마련에 나서는 기업이 최소 30%를 넘어서고 인지도도 60% 이상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개별 기업의 내부사정이나 실정은 이러한 기대치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현재 기업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설마 우리가 걸릴까’ ‘돈들여 대책을 마련해봤자 거기서 거기’ ‘뚜껑이 열리고 겪어봐야 알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거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부터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아예 관심밖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중소제조업체의 경우 회사 대표부터 PL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가 많아 문제가 심각하다.

 그동안 PL관련 교육 및 컨설팅을 해온 PL관련 기구들은 PL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 표면적인 문제 해결방법을 중심으로 교육과 컨설팅 업무을 해왔다.

 보다 나은 안전한 제품생산 과정을 확보해 제품 결함을 최소화하고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 PL법 시행의 근본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에 대한 해결 및 대처방안 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제조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아닌 소비자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제조물책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