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정보가전시대를 맞아 ‘산업디자인(Industial Design)’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전자제품을 디자인할 때는 제품의 외형 특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 치중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자제품이 다양한 조작을 통해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정보가전으로 변화함에 따라 인체공학적인 조작편의성을 위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UI:User Interface Desgin)이나 메뉴 화면을 통해 제품을 조작하는 데 필요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인(Graphic User Interface Design) 등의 중요성이 급격히 대두되고 있는 것.
정보가전 디자인에 있어 UI가 중요해진 배경은 우선 제품의 경박단소화와 연관이 높다. 제품이 경박단소화하면 많은 정보와 복잡한 기능을 제한된 공간 속에서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유저인터페이스의 획기적인 개선이 요구된다. UI 중에서도 특히 그림언어(일명 아이콘)를 사용하는 GUI는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 운용체계에서 볼 수 있듯 기능에 대한 빠른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에 정보가전에 있어 핵심요소다.
디지털TV, DVD플레이어, 홈시어터, 오디오 등 AV제품의 경우 제품 외형은 단순함을 지향해 컨트롤 버튼이나 패널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대신 대부분의 기능을 리모컨으로 조작하도록 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버튼만 봐서는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알기 어려워 UI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거나 새로운 개념의 접근이 요구된다.
디지털TV나 셋톱박스의 경우 수백개의 채널을 자신의 관심사에 맞게 설정하거나 홈쇼핑·증권·오락서비스 등을 이용하게 될 때 현재 수준보다 조작성의 획기적인 진전이 없이는 사용이 어렵다.
노트북PC·PDA·디지털카메라·MP3플레이어 등 휴대형 정보가전의 경우 대부분이 휴대성을 고려해 크기는 작아지는 반면 기능은 다양해지고 있어 하나의 버튼으로 여러가지 기능을 수행하게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인터넷과의 접속을 통한 데이터 교환이 필수적이다. 버튼을 누르는 횟수나 누르고 있는 시간에 따라 다른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 이동전화기의 경우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크기를 줄여야 하지만 컨트롤키가 작아져 조작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소니나 브라운 등 세계적인 업체들은 일찍이 80년대 초반부터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투자해 버튼에 인쇄된 그래픽이나 버튼의 감촉까지 고려해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의 경우 90년대 중후반에서야 UI디자인이 제품개발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삼성·LG·대우 등 가전3사는 자체 디자인연구소를 통해 관련 인력양성과 연구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부문에서는 모바일 정보가전 개발에 관련인력이 요구됨에 따라 올초 별도로 인력충원에 나서기도 했다.
LG전자 디지털디자인연구소의 함명호 부장은 “모바일기기의 대거 등장과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가전의 급증으로 외형 못지 않게 UI 및 GUI에 대해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제품을 만졌을 때의 감촉과 어떤 버튼을 누르면 들리는 소리까지 고려해 디자인하는 추세”라고 변화상을 설명했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의 사정은 아직 열악하다. 실례로 최근 한 디지털녹음기 개발업체의 경우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기능이 그래픽 창에서 지원되는 제품을 개발하려 했으나 기존 개발자들의 능력한계로 관련 전문업체를 수소문하느라 개발일정에 상당한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제부터라도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4일에는 한국정보과학회 산하 인간과컴퓨터상호작용연구회(HUMAN COMPUTER INTERACTION SIG http://www.hcikorea.org)가 ‘HCI 디자인 클릭 더 퓨처(Design Click the Future)!’라는 주제로 학술대회(HCI2002)를 개최, 열띤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이화여대 장동훈 교수는 “이 모임은 지난 91년부터 발족돼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해왔다”며 “최근 들어 UI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져 이번 대회에는 업계와 학계 관계자 1100여명이 참석하고 발표논문수도 사상 최대인 200여편에 이르렀을 정도”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또 “산·학·연 협력을 통해 전문연구자들의 최신 연구결과를 제품 개발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배가돼야 할 것”이라며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발자들이 제품의 기능구현 이전에 그 제품을 사용할 인간을 먼저 고려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