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법` 태풍 몰려온다](2)마인드부터 바꾸자

 2002년 8월. 선풍기 생산업체인 A사는 법원으로부터 선풍기 과열에 따른 화재로 중화상을 입은 일가족 5명에게 모두 3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는다.

 합리적인 대체설계가 가능한 데도 불구하고 A사 제품이 경쟁업체 선풍기와 달리 과열방지장치 등 안전기능을 채택하지 않은 제조상의 결함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A사는 손해배상에 따른 막대한 금전적 피해뿐 아니라 종전 대기업에 대한 OEM 납품과 PB상품 거래가 전면 중단되면서 경영 위기를 맞는다.

 오는 7월부터 제조물책임(PL)법이 시행될 경우 중소기업이 직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처럼 PL법에 대처하는 능력 여부에 따라 ‘기업의 사활’까지 좌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이에 대한 인식과 준비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지난 5월 한국품질경영학회가 중소제조업체 26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PL제도에 대한 인지도는 52.3%로 겨우 절반을 넘어섰으며 그나마 PL대책을 추진중인 기업은 28.2%에 불과했다.

 또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9개 손해보험사와 공동으로 운영중인 중소기업 PL 단체보험제도의 경우 개별보험보다 보험료가 20∼30% 저렴하지만 가입건수는 지난해 8월말 현재 166건에 불과했으며 올들어서도 가입증가율은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PL컨설팅을 받은 중소기업은 전업종을 통틀어 고작 5개사로 이 가운데 전자관련 기업은 1곳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들의 PL에 대한 시각과 태도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요약되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동종업계의 사례를 지켜보면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다소 안이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경영자의 마인드가 이렇다 보니 대다수 중소기업은 부품과 소재를 납품하는 협력업체 선정에 있어 여전히 제품의 안전성보다는 납품원가를 바탕으로 결정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격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안전과 기술경쟁이 후순위로 밀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실정이다.

 이는 PL법이 시행될 경우 안전성이 상품구매의 1차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고 원재료와 제품의 스펙변경에 따른 출시지연으로 막대한 경영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대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체감지수가 아직까지 제로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에 대해 PL전문가들은 “국내 중소기업의 경영형태가 톱다운(Top Down)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최고경영자들의 마인드 전환이 PL대응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전제, “특히 PL법의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즉 PL법의 도입취지는 표면적으로는 피해자 구제와 결함제품의 방지에 있으나 그 이면에는 수익성 위주의 경영으로 제품안전을 소홀히 한다면 시장에서 자동으로 기업이 퇴출되는 시장정리 기능이 내재돼 있다. 따라서 소비자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제품결함을 최소화한 BS(Before sales Service) 지향적 제품을 만들지 않을 경우 시장에서의 생존조차 위협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제품결함에 따른 사고발생처리를 보험으로 해결하려는 소극적 자세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소송사건에 휘말릴 경우 제품에 대한 불신은 물론 나아가 기업 이미지 및 신용도의 추락으로 회사운영이 기로에 설 수밖에 없으며 보험사의 배상지급금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규 PL코리아 이사는 “우선 최고경영자들이 PL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설계·제조상 결함 방지를 위한 안전대책의 전반적인 점검과 제품안전경영시스템 구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보험가입 등을 통한 위험분산 조치는 최후의 선택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