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손잡고 아시아 시장에 특화된 의료 스마트 카드의 표준 마련에 나섰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아시아에서 나름의 표준을 정함으로써 향후 스마트카드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이기한 서울여대 교수(한국 ‘TC 215’ 5분과 위원장)는 “세계의료정보표준을 정하는 국제표준화기구(ISO) 기술위원회(TC)215의 5분과(건강기록카드) 회원국 소속 한국·일본 기술위원들이 정기 기술교류회에서 국제표준안 채택과 관련해 공동보조를 맞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한·일 기술위원들은 이날 모임에서 양국이 제출한 전자건강카드표준안을 공식적인 국제표준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중국측의 지원도 이끌어내는 등 아시아 지역권의 세력을 모으는 데 온힘을 쏟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한·일 양측이 제시한 수정안에는 의료보험자 코드체계인 전자건강카드의 발행번호 부호체계를 5자리로 제한하지 말고 탄력성있게 가져가고 현재 최대 27개 영문자로만 개인(환자)의 신상정보를 입력할 수 있게 규정한 표준안에 대해서도 한국어·일본어·중국어 등 각국의 고유 언어로 개인의 신상정보를 입력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산업번호와 국가번호 체계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일례로 헬스케어의 산업코드는 ‘80’, 한국의 국가코드는 ‘410’으로 돼있다.
양국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수정안을 오는 4월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되는 ISO TC 215 정기회의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한·일 양국이 국제표준을 정하는 데 있어 긴밀한 협조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은 무엇보다 선진국들이 ISO의 중심에 선 채 국제표준화 활동을 벌이면서 아시아권 국가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ISO는 그동안 세계 어디서든지 스마트카드 리더의 판독이 가능하게끔 산업번호(2자리)·국가번호(3자리)·발행번호(5자리)·점검번호(1자리) 등 4개 부호 체계로 이뤄지고 총 11개의 숫자만을 스마트카드에 입력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제표준안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한·일 양국은 전자건강카드 발행번호의 국제표준을 5자리로 채택하게 되면 환자를 진료한 후 보험을 청구하거나 보험을 지급하는 의료단체의 수가 제한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어 각국의 고유한 의료보험 체계와 상황에 맞지 않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실제 일본의 경우 170억엔의 예산을 들여 발행번호를 8자리로 규정한 전자건강카드 시스템을 도입, 오는 2003년까지 전국민에게 1인당 전자건강카드 1장을 제공한다는 계획하에 시범 사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현재 ISO측 의견대로 국제표준안이 확정되면 모든 시스템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
대한의료정보학회의 한 관계자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전자건강카드를 도입하지도 않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급하면 발행번호를 5자리로 규정한 현 국제표준안을 도입하는 데 별 문제점이 없다”며 “그러나 세계표준화 전쟁에서 아시아권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 일본과 공조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한·일의 수정안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면 우리나라는 국제표준화 전쟁에서 MPEG과 함께 처방전달시스템(OCS)·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의무기록시스템(EMR) 등 의료정보시스템분야에서도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