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특강>국산 시뮬레이터 게임기 개발

 필자 권동수

 80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82년 KAIST 기계공학과 석사

 91년 미국 조지아공대(GIT) 기계공학과 박사

 91년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로보틱스 및 공정시스템부 텔레로보틱스과 연구원

 95년 KAIST 기계공학과 조교수

 98년 지씨텍 기술이사

 2001년 KAIST 기계공학과 부교수

 kwonds@mail.kaist.ac.kr

 

 아케이드게임장용 시뮬레이터 게임기의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다.

 20여년간 번창했던 아케이드 게임산업이 소니의 PS2 등 비디오 콘솔게임기와 온라인 및 PC 게임의 등장으로 인해 성장세가 주춤해지면서 아케이드게임장용 시뮬레이터 게임기는 이러한 위기를 돌파해 나갈 중요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게임 개발자들은 가정에서 PC 또는 콘솔게임기로 즐길 수 없는 차별화된 게임을 만들기 위해 체감형 게임을 선택하고 시뮬레이터 게임기를 내놓고 있다.

 그동안 상용화된 체감형 게임기의 대부분은 간단한 모션 센서·휴대형 디스플레이 장치(HMD)·진동기 등의 장비를 이용해 기존의 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 몰입감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비디오 또는 온라인 게임처럼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대안으로 운동판을 사용한 시뮬레이터형 게임기의 개발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실 운동판을 사용한 게임기를 제작하려는 노력은 90년대 초반부터 있었다. 하지만 상용화된 게임기의 가격이나 유지보수의 어려움 그리고 기반 기술의 부재 등으로 인해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최근 몇년 사이에 PC기반 그래픽 시스템의 성능 등 기술적인 진보와 전기식 운동판의 발전으로 인해 저렴한 가격의 시뮬레이터형 게임기가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시뮬레이터 기술은 원래 군사용 항공기의 모의 비행 훈련을 위해 개발돼 왔으며 그동안 주로 군사용 혹은 민간 항공기용 훈련에 사용됐다. 시뮬레이터형 게임기를 제작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군사훈련용으로 개발된 고급 기술과 장비의 가격을 낮추고 소형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시뮬레이터 게임기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부터다.

 주로 유압식 구동기를 사용해 시뮬레이터를 제작하던 90년대 초반에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서는 6자유도 유압식 운동판을 소형화해 1인승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이 연구에서 특이할 만한 사항은 최초로 운동판을 매달림형(hanging or ceiling-mounted type)으로 제작함으로써 유압식 구동기를 소형화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93년에 피 덴니(P. Denne)는 전기식 구동기를 사용할 경우에는 운동판의 가격이 낮아지고 유지보수가 편리해지기 때문에 보급형 아케이드 게임 제작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폈다.

 또 98년에는 운동판의 가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자유도 운동판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고주파 병진 가속도감의 생성 외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이러한 꾸준한 연구의 성과로 제품의 크기와 무게는 계속 줄어들고 새로운 제품들이 해외에서 연이어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저가형의 소형 운동판을 제작해 출시하고 있다. 국내업체로는 지씨텍·온에듀·디지털선일·다림비전·시뮬라인·비전테크시스템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업체는 체감형 게임기의 핵심 모듈인 모션 시뮬레이터를 자체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게임기를 개발하고 있다.

 외국산 가운데에는 맥스플라이트(MAXFlight)사와 어뮤즈먼트테크(Amusement Tech)사의 제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들은 국산 제품보다 규모는 크지만 대신에 360도 회전이 가능한 2자유도 운동을 구사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맥스플라이트사의 제품들은 사용자의 무게중심을 회전축보다 전방에 둠으로써 강한 가속도감을 생성해내는 ‘포워드 오브 액시스모션기술(Forward of Axis Motion Technology)’을 사용했다. 어뮤즈먼트테크사도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는 ‘버추얼 스페어(Virtual Sphere)’라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외에 스트리콘사와 세가사의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등도 대표적인 제품으로 꼽을 수 있다.

 시뮬레이터 기술은 크게 동역학 모델링 기술, 시각화 기술, 운동감 생성을 위한 운동판 제어 기술 등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게임에서 사용되는 동역학 모델링 기술은 고가의 훈련용 시뮬레이터에서 사용되는 것에 비해 매우 단순화돼 있다. 시각화 기술도 PC의 그래픽 성능 향상과 뛰어난 시각화 엔진을 가진 비디오 게임기의 활용 등으로 어느정도 해결되고 있다. 따라서 시뮬레이터를 게임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술은 운동판 제어 및 효과 생성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시뮬레이터 운동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것에 사용되는 워시아웃(washout) 알고리듬의 종류와 워시아웃 필터 계수의 튜닝이라고 할 수 있다. 시뮬레이터나 게임 등에서 사용하는 차량이나 항공기 등의 움직임은 3차원의 공간제약이 없는 운동이다. 그러나 운동판 위의 움직임으로 표현할 때에 운동판은 공간제약이 있으므로 모션을 적절하게 변환해 줘야 하는데 이를 담당해 주는 것이 워시아웃 필터다.

 대부분 엔지니어의 경험과 감각에 의해서 워쉬아웃 필터의 여러 계수들을 튜닝해 왔는데 90년대 후반에는 이러한 숙련자가 필요하다는 단점을 없애기 위해서 워시아웃 필터 튜닝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 제시되기도 했고 전문가 시스템을 사용하는 시도도 있었다.

 운동감을 동반하는 시뮬레이터형 게임기에서는 속도감 외에 진동 충돌 등의 운동효과가 중요하다. 고급 항공기 시뮬레이터에서는 비행시 난류효과를 생성하기 위해 복잡한 유체 방정식을 풀어서 비력(specific force)을 생성한 후 워시아웃 필터를 통해 구현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KAIST에서 개발한 자전거 시뮬레이터에서는 노면의 종류에 따른 진동 등을 워시아웃 필터를 거치지 않고 생성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시뮬레이터형 게임이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대형 게임개발사와 전문 시뮬레이터용 운동판 개발사들간에 기술 지원 및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게임개발사들은 시뮬레이터와 연동해 기존의 게임에서 운동판과 결합해 게임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게임이나 시뮬레이터형 게임 콘텐츠를 확보하고 여기서 필요한 운동 등의 정보를 시뮬레이터 제작업체와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운동판을 제작해 게임에 몰입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모션을 생성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운동판의 가격이다.

 시뮬레이터형 게임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운동판의 가격이 현재보다 저렴해 져야 한다. 운동판의 저가격이 실현되면 가정에서도 아케이드게임장에서 볼 수 있는 체감형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또한 게임개발사와 시뮬레이터용 운동판을 제작하는 업체들이 협력해 업계 표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외국의 사례를 든다면 현재 가장 보편화된 체감형 게임 장비인 힘 반향(force feedback) 조이스틱, 핸들, 조이패드 등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서 자사의 게임제작용 API집합인 다이렉트X의 다이렉트인풋(DirectInput)에서 힘반향형 장비들에 대한 표준을 정하고 관련 API를 지원해 줬다.

 이를 통해 게임 제작사들이 손쉽게 게임에 포스피드백 효과를 삽입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기존의 시뮬레이터형 게임들이 대부분 PC 또는 비디오콘솔 게임기로 제작된 게임에 운동판을 덧붙이는 형태로 제작돼 왔다. 운동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설계된 게임으로부터 운동감 생성에 필요하다고 알려진 탑승물의 병진 가속도 등의 정보만을 얻어내 운동판을 구동시키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자동차나 항공기 시뮬레이터 제작에 사용되던 운동감 생성 방법을 게임 제작에 적용한 것인데 게임용 역학 모델은 시뮬레이션에 사용되는 것에 비해 훨씬 비현실적이고 또한 게임용 운동판의 자유도도 낮다. 무엇보다 게임 효과 구현에 필요한 운동감은 시뮬레이터가 목표로 하는 탑승감 모사와는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 게임들은 만족스럽지 못한 실정이다.

 따라서 빠른 시일내로 이를 해결해 운동판을 보다 쉽게 게임적인 효과 표현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해야 한다. 또 게임 제작자들이 손쉽게 필요한 운동감을 생성할 수 있게 하여 운동판을 보편적인 게임장비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게임효과 표현에 적합한 운동감 생성방법을 개발하고 게임 엔진에 쉽게 삽입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의 개발이 필요하다.

 시뮬레이터형 게임은 실제 체험하기 어려운 우주여행이나 상상으로만 가능하던 일들을 값싼 비용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승마·제트스키· 스노보드 등 특권층만 즐길 수 있는 고급 스포츠부터 레이싱카·기차·비행기·우주선 등 상당한 전문 경력이 없으면 손도 델 수 없는 장치들을 직접 실감나게 운전해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시뮬레이터형 게임의 응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며 앞으로 장치들이 더욱 발전된다면 시뮬레이터형 게임기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