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통합(SI)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분쟁을 방지하고 조정하는 제도를 확립하는 작업은 SI업계에서 가장 오래된 숙원 과제 중의 하나다.
SI사업의 특성상 발주자와 사업자, 혹은 원도급자와 하도급자가 생각하는 용역의 범위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아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기 때문. 분쟁이 실제 발생할 경우에도 프로젝트 계약서에 명시된 ‘본 계약서의 해석상 의문이 있을 경우에는 갑의 해석에 의한다’는 항목으로 인해 갑의 위치에 있는 발주자나 원도급자가 우선권을 갖게 돼 약자인 업체는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부는 올해 SI산업의 분쟁방지와 조정을 위해 법개정과 함께 상설기구의 설립도 추진한다.
우선 올 상반기중 국가계약법 개정을 요청해 현재 재경부가 2억원 이상의 공공사업만을 대상으로 운영중인 ‘국제계약분쟁조정위원회’가 2억원 미만의 국내 SI사업 분쟁도 관리하게 할 계획이다. 위원회 산하에 SI산업 특성에 맞는 전문분과를 신설함으로써 기능을 현실화하는 한편 이름도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로 바꿔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민간 발주사업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심사·조정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분쟁조정위원회도 설립된다. 당분간 민간 차원에서의 분쟁조정 신청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민간부문의 조정신청이 매년 20여건에 이르는 건설업의 경우를 볼 때 SI산업을 위한 분쟁조정위원회의 설립도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대기업과 중소업체간의 하도급 관계에서 발생하는 분쟁 역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이를 위해 정통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하도급법에 의거해 별도의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를 운영하고 있으나 최근 3년간 전체 신고실적은 5건에 불과하다.
중소업체들은 “하도급조정협의회가 분쟁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원도급자로부터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신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하도급법 자체가 강력한 규정을 갖고 있어 중소기업들이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고 적절히 활용만 한다면 충분히 분쟁조정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통부는 조정에 사용된 각종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함으로써 조정안에 대한 실효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갈 예정이다. 제도마련을 위해 정통부는 지난 1월에 발족한 ‘소프트웨어사업 법제도 연구’팀을 통해 건설 등 국내 타 산업이나 해외지역 분쟁조정 사례들을 수집중이다. 여기에 국내업체들로부터 모은 실제 분쟁사례를 포함, 관련 법제화를 위한 당위성을 확보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또한 정부는 분쟁발생 이후의 조정보다는 분쟁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프로젝트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분쟁이 계약서상의 불분명한 사업범위 규정에서 출발한다는 분석아래 보다 명확한 계약체계를 확립해 나갈 계획이다.
우선 실제 사업계약에 활용되는 ‘기술용역계약일반조건’을 보완해 SI산업의 특성을 적극 반영하는 한편 소프트웨어사업표준계약서를 수립함으로써 분쟁이 잦은 사항에 대한 권리관계를 명확히 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각종 제도화와 표준안 마련을 통해 분쟁방지 및 조정기능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SI업계도 일단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대부분의 분쟁들은 발주자와 사업 수행업체간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다양하게 얽혀있어 단순 명목상의 조직이나 제도로는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지적들이다.
따라서 SI업계는 향후 정부가 마련할 분쟁방지 및 조정제도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다양한 분쟁사례들을 수집해 이를 체계화시켜 나가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