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업체가 사내에 제조물책임(PL)에 대응할 만한 인력을 거의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를 대상으로 교육시킬 PL 전문가들도 태부족하다.’
LG전자 품질센터 PL사무국 김재영 선임연구원은 “PL 시행일이 4개월 가량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PL관련 인력수요에 비해 그 공급이 턱없이 모자라다”고 밝혔다. PL법만 덩그러니 앞에 놓여 있다는 게 PL시대를 눈앞에 둔 우리 업계의 현주소인 셈이다.
따라서 제조업체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파괴력을 지닌 PL법이 ‘발등의 불’인 상황에서도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업체들은 PL 예방과 PL 대응을 하는 데 있어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PL법에 대한 인식 부족탓’이라고만 몰아붙인다면 중소·중견업체의 입장에선 억울한 면이 적지 않다. 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시킬 만큼 법리와 실무를 두루 갖춘 외부의 PL 전문인력들이 없다시피하기 때문이다.
2년전 전사적인 PL 대응 체제를 갖춰 중소업체를 교육시킬 정도로 노하우를 쌓은 LG전자와 삼성전자도 외부에 대한 인력지원은 꿈도 못꾼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자사의 품질과 직접 연관이 되는 협력업체도 교육시킬 만큼 자체 PL전문 인력이 충분치 않다”며 “올해부터 소수 협력 업체만을 선별해 PL 교육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PL센터 임영주 소장은 “PL법 이론은 물론 제품설계에서부터 생산·유통 단계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안정성을 점검할 수 있을 정도로 가르칠 전문인력은 기업체는 물론 정부기관·민간교육기관까지 다 합쳐도 10명 내외가 고작”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조차도 국내 PL전문가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업체들을 대상으로 PL교육을 시키는 인력풀을 구성하는 데 손을 거의 놓다시피하고 있는 형편이다. 산업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PL교육을 이미 이수한 인력 현황이나 구축된 PL 전문인력 DB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전문가가 부족하다 보니 이제까지 실시한 교육프로그램이 대부분 이론에만 맞춰져 있어 상당수 제조업체 입장에선 현실성이 결여돼 그저 따분한 법공부이면서 수박겉핥기식 교육에 그쳤다.
전자산업진흥회 전자기기산업팀 오수경 과장은 “지금까지 업체들이 받은 교육은 ‘코끼리가 맛도 모르고 비스킷을 먹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선도전기의 품질경영부 피형진 부장은 “지난해 PL 교육을 받았지만 그 교육내용이 피부에 와닿지 않아 아직까지 사내에 PL 대응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미전기의 품질관리부 황인수 부장도 “업종별로 해당 업체를 모아 교육을 하는 게 아니어서 제품의 결함방지를 위한 안전설계를 하는데 별 도움이 안됐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제조업체들은 PL법 시행일이 자꾸 지연됨에 따라 업체의 대응심리도 함께 느슨해져 PL 인력을 집중 양성하는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도 일부 제기하고 있다. LG전자·삼성전자 대기업의 PL 전문인력들도 이러한 점을 수긍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에 PL제도가 시행된 이후 불어닥칠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PL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또 PL자격증 제도를 도입하고 사례를 중심으로 한 교육프로그램과 업종별 인력풀·자료구축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