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미국 뉴욕에서는 세계경제인포럼인 일명 ‘다보스포럼’이 1주일간의 일정으로 열렸다. 다보스포럼의 핵심은 지금 전세계 경제가 전환기를 맞고 있으며 이의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
이번 다보스포럼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통신사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기 위해 열린 ‘통신사업 승자는’이라는 제목의 패널토론이었다. 이 패널토론은 통신산업의 승자가 전세계 경제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통신사업자들의 암묵적 합의가 드러난 이른바 세계경제를 향한 선전포고였다. 바로 지금이 패러다임 전환기며 전환의 주춧돌은 통신사업이 될 것이라는 선언적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 토론에 참가한 이상철 KT 사장은 전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인터넷, 이동전화서비스 등 통신인프라와 진화된 가입자 기반을 가진 한국에서의 통신사업 가능성과 그에 따른 비전을 제시했다. 이상철 사장이 이날 패널토론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KT가 전세계 통신시장에 미래비전을 제시할 것이며 “이제 그 역사가 시작됐다”는 말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KT를 따르라=KT가 최근 내세운 슬로건은 ‘렛츠 KT’다. 이 말은 일견 지극히 평범한 슬로건 같지만 매우 함축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다.
‘렛츠 KT’에는 자신감이 들어있다. 지난해 KT는 은밀히 벤치마킹 대상을 찾았다. 결론은 허무했다. KT는 전세계 어느 통신사업자에게서도 벤치마킹을 할 수 없었다. KT만큼 진화된 유무선가입자 기반을 보유한 회사가 없었다.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 등 국가 전체를 커버하는 통신사업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NTT도코모, BT, AT&T도 아니었다.
결국 KT는 벤치마킹 대상을 찾는 대신 스스로 미래비전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렛츠KT’ ‘신사업’전략으로 이름붙여진 유무선통합서비스, e비즈 수익모델 창출이 그것이다. 내부적으로는 KT 임직원과 고객에게 미래로 가자는 선언적 의미를 지닌 ‘가자 KT’였고 외부적으로는 ‘전세계 통신사업자여, 나를 따르라’라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이같은 자신감에 MS의 빌 게이츠도 감동했고 급기야 연말에 KT와 전략적 제휴에 참여하게 된다.
◇KT의 ‘천상천하 유아독존’=KT에 당분간 두려움은 없어 보인다. KT의 자신감은 내부 문건자료인 이른바 ‘민영화 추진방안’에서 극대화된다. 본지 2월 1일자 1·3면 참조
3월, 6월, 9월에 걸쳐 단계적인 민영화방안을 추진하되 KT 이사회가 독자적인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영구조를 만들자는 것이 이 방안의 핵심이다. 재벌기업에 주식을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KT 스스로 재벌구도에 대응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이 KT가 선택한 길이었다.
특정 재벌에 편입되기보다는 스스로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구도를 갖겠다는 이 방안은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수십년간 정부의 보호아래 성장하기는 했지만 통신분야 전문기업이 국내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에 대응할 수 있는 세력을 형성했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구도의 경제 패러다임에 맞설 만한 통신사업자의 성장을,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도래를 의미하는 폭탄선언인 셈이다.
◇통신사업의 미래=통신사업자는 이제 네트워크를 구축, 관리하는 기존 사업분야와 가입자 기반을 이용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유무선가입자가 모두 포화된 상태에서 더이상 양적으로 성장할 새로운 시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유무선통합서비스를 통해 당분간 새로운 가입자 확보를 모색하겠지만 이는 통신시장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입자 확보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진화일 뿐이다.
그렇다면 통신사업자의 미래는 어떻게 전환되는가. 통신사업자들은 기존 가입자 모집 중심의 양적 팽창에서 가입자 기반을 이용해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야 한다. 단순한 통화료 수입이 아닌 가입자의 생활패턴을 통신서비스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바로 질적 변화다. 통신사업의 수익모델을 음성통화 수익에서 가입자 일상생활 전반으로 확장시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업자는 가입자가 쇼핑을 하거나, 이동을 하거나, 업무를 보거나 하는 각종 사회적 활동에 통신서비스를 결합시키는 서비스통합, 산업통합, 경제통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최근 통신사업자는 가입자 생활영역에서 각종 통신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21세기 통신사업자가 통신서비스 회사로 남느냐 1, 2, 3차를 망라한 매머드급 종합회사로 성장하느냐 하는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통신기기가 ‘통신기기로 남는냐, 아니면 생활수단으로 변신하느냐’, 통신사업자가 ‘통신서비스회사로 남느냐, 아니면 종합회사로 변하느냐’는 사업자들의 고민거리다.
<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