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옛날부터 인간들은 하늘과 땅, 인간 상호간에 서로 통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하늘을 숭상하고 땅을 경외하며 인간을 사랑하는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바탕으로 상호간 화합하고자 하는 열망은 특히 한국인에게 매우 강하게 나타나는데, 그 현상 하나가 마을 어귀마다 세워져 있던 솟대다.
정월 대보름날, 마을 입구에 솟대를 세우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나무를 자르고 조각하고 연결하여 세운다. 세워진 솟대를 향해 하늘과 인간을 잇는 중계자 무녀가 제를 지내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하늘에 기원한다. 이어 마을 사람들이 각각의 소망을 솟대를 통해 하늘에 기원한다. 세워진 솟대는 1년동안 인간의 기원을 하늘에 전달해주는 매개체로 마을 입구에 자리한다.
솟대는 통신의 기본이 되는 언어와 문자 등의 정보를 전기적 특성을 이용해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기를 통해 하늘과 통신하고자 하는 원시적이면서도 현대통신의 최종 목표가 되는 통신방식으로 인류의 소망을 하늘로 전하는 역할을 수행한 조형 매개체다. 높다란 장대 위에 나무로 깎은 새를 앉혀 하늘을 향해 날고있는 형상의 솟대는 지역에 따라서 돌로 만들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철제를 이용해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 마을 어귀에 세워진 장승, 돌탑들과 함께 짝을 이루는 솟대는 나무로 만들어진 조각목에다 새를 얹어놓은 형태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통신용 안테나와 비슷하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기능성으로 솟대를 볼 때 장대는 신간(神竿)으로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축의 의미가 되고, 초자연적인 존재가 지상으로 하강하는 통로가 되는 안테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또한 솟대 위에 앉아있는 한 마리 또는 세 마리의 새는 정보 전달매체가 되어 무선통신의 신호 전달매체인 전파역할을 담당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솟대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타 부족의 흡수병합을 통하여 국가가 탄생하기 시작한 청동기시대였다. 당시 국가의 통치자는 통치를 위해 필요한 종교적 이념을 절대적 존재인 하늘에서 구했고, 하늘의 신 내지는 하늘의 아들로 자처했다. 이를 위해 하늘에 대한 의례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고, 하늘과 통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하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줄 필요도 있었다.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며칠동안 술 마시며 가무를 즐기던 부여의 영고와,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이 그러한 제천행사의 일종이었다. 또한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민중을 하나의 종교로 통합시킬 수 있는 신앙도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하늘나무와 새를 통한 솟대신앙이 발전되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솟대에 사용된 나무는 땅 속 깊이 파고드는 뿌리가 있어 지하계에 이어져 있고, 솟아오르는 식물의 생장력과 뻗어오르는 상징성을 통해 하늘과 연결하는 도구로 적합했다. 따라서 솟대에 사용되는 나무는 초창기 가지와 잎이 그대로 자라나 살아있는 나무가 우주나무로 사용되다가 점차 가지와 잎이 제거된 나무기둥이 우주나무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비록 나무를 잘라 만든 솟대 기둥일지라도 단순한 기둥이 아니라 생장력을 지니고 있는 살아있는 나무의 대용품이라 볼 수 있다.
솟대 위에 얹혀진 새도 하늘숭배 사상과 연관이 되어있다. 고대국가 통치자의 권위와 신성을 위한 하늘숭배 과정에서 새가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하늘과 통치자 사이를 연결하여 천계로 상승하고 지계로 다시 하강하는 경우 새가 그 운반체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이 새 신앙은 훗날 고대국가체제가 완성된 전제왕권 아래서는 천변만화의 능력을 가진 용 신앙으로 대치되기도 했지만, 무속을 비롯한 민간신앙에서는 지금까지 유효한 기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솟대에 사용된 새는 주로 오리가 사용되는데, 하늘로의 정보전달 매체로서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농경문화에서 필요한 물과 풍년을 상징하고 있다.
솟대는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다. 마을의 경계선이며, 내부와 외부가 구분되는 곳에 서있다. 마을은 옛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이자 우주의 중심이었다. 자신의 마을이 아닌 곳은 불안과 혼돈의 상태로 늘 부조화의 세계일 뿐이었다. 이는 자신의 마을이 하늘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선택된 땅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 믿음을 위해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들고 날 때마다 바라보며 기원하고 확인받을 수 있는 동질적 형상이 필요했고, 그 결과로 마을마다 솟대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통신의 기본이 되는 언어와 문자를 전기적 특성을 이용해 전달하는 현대통신 방식과 비교해 볼 때 솟대는 원초적이면서 미래적인 요소를 동시에 가졌다. 하늘 향한 안테나 높이 세운 뒤 무녀를 통해 하늘과의 통신을 중계하고, 새라는 매체를 통해 하늘로 그 정보를 전달하는 통신 시스템은 전기적 특성을 이용한 현 시대 통신시스템의 원조가 된다. 또한 전기적 특성을 이용하지 않고 진정으로 상대와 통신할 수 있다면 그것은 통신시스템 발전의 끝이며 최종 미래가 된다. 생각만 해도 서로 교신할 수 있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통신의 최종 목표가 되는 텔레파시 통신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학회 편 ‘한국지명총람’을 통하여 휴전선 이남 남한지역의 지명에서 솟대와 연관된 지명을 파악하여 발표했다. 솟대배기, 솔대배기, 화짓대배기, 효대배기, 진대배기, 짐대배기 등의 지명으로 불린 곳의 수가 휴전선 이남에 625개소가 확인되었다. 보편적 조형물이었던 장승과 관련된 지명이 932개소인 점과 비교한다면 솟대신앙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솟대의 분포를 통해서도 우리민족의 정보통신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특성을 확인할 수가 있다.
분명 솟대신앙이 우리나라에만 분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북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솟대의 탄생시기도 청동기시대의 유물에서도 나뭇가지나 기둥에 새를 얹힌 조형물이나 문양이 간혹 발견되어 넓은 지역성과 오랜 시간성은 솟대가 고대로부터 북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간 보편적인 신앙요소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유난히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민족이 하늘을 향한 통신행위에 대한 열망과 교류를 그만큼 많이 수행했다는 결과가 된다.
언어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만이 통신이 아니다.
들리고 보이는 것만이 통신은 아니다.
진정한 통신은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고, 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마음의 통신이다. 그 특성은 우리민족에게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우리네 어머니, 마을을 들고날 때마다 솟대를 바라보며 집 떠난 자식을 위해 하늘에 기원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으로 나타난다. 새벽에 물 한사발 떠놓고 소리없이 기원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으로 나타난다.
전기라는 에너지가 필요없는 통신방식, 그것은 무조건적인 헌신을 감당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이다. 어머니의 그 마음을 하늘로 전달해 준 매개체가 솟대였으며, 하늘을 움직이는 그 마음이 가정과 마을과 민족을 지켰고, 지켜오고 있다. 듣고, 보고,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이제 솟대를 볼 수 있는 마을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장소 교회로 바뀌고 법당으로 바뀌었을 지라도 우리네 어머니의 하늘과의 통신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새벽마다 자식들을 위해 두 손을 모으고 기원하는 사람들이 우리네 어머니말고 어느나라 어디에 또 있겠는가.
그동안 우리네 어머니들이 드린 기원에 하늘이 때를 주셨다. 새로운 천년에 펼쳐질 정보통신 세상을 통합하고 조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누구보다도 슬프고 누구보다 많이 빼앗겼던 우리 어머니, 우리 마을, 우리 민족이 강하고 자랑스러워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다.
하늘의 그 뜻을 거슬리지 않는 것이 오늘도 새벽마다 자식을 위해 기원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그것이 우리의 마음 어귀에 늘 자리하고 있는 솟대의 꿈이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장)
<고은미부장 emk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