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로 유명한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1837년 8월 22일 기차를 타고 가는 기행문에서 창밖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길가에 핀 꽃은 더이상 꽃이 아니라 그저 색깔있는 얼룩일 뿐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는 더 빨갛고 흰 줄무늬일 뿐이지요. 점이라고는 없고, 모든 것은 선이 되어 버립니다. 논밭은 길고 노란 빛줄기가 되어버리고요.”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나무나 오두막 같은 것은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자세히 보려고 하면 이미 지나쳐 버리고 없다. 위고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보았다. 기차가 빠른 속도로 훑고 지나가는 풍경이 차창(모니터)에 담긴 것이다.
여행은 속도에 비례해 단조로워진다. 속도가 빠를수록 창밖의 콘텐츠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보봐리 부인’의 작가 플로베르는 1864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난 열차안에서 지루하다네. 따분해서 5분마다 울부짖기 시작할 만큼”이라고 썼다. 창밖의 콘텐츠(풍경)가 무료해지자 승객들은 창 안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았다. 읽을 거리다. 덜컹거리는 마차와 달리 철길을 따라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기차는 승객들이 쾌적한 상태에서 독서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1848년께부터 역에서 책이나 신문을 팔기 시작했다. 여러 역을 잇는 서점 조직과 도서대여 거래조직도 생겨났다. 영국의 유명한 루틀리지출판사는 이때 여러 작가의 소설을 엮은 ‘철도총서’를 발간해 인기를 끌었다.
승객들이 주로 찾는 것이 처음에는 소설이었지만, 차차 신문으로 옮아갔다. 프랑스에서는 1852년부터 기차역에 서점을 열었는데, 1860년대부터는 소설보다 신문이 인기를 끌었다. 1866년 서적 판매 수익은 53만프랑이었지만, 신문 판매 수익은 97만프랑에 달했다.
인터넷을 이용하다 보면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만나게 된다. 위고가 기차를 타고 본 꽃이 더이상 꽃이 아니라 ‘빨갛고 흰 줄무늬’로 나타나듯, 인터넷에서 보는 콘텐츠도 새로운 형태의 사이버 현실로 마주하게 된다. 이를 ‘디지털 콘텐츠’라고 한다.
인터넷 항해(web surfing)로 만나게 되는 콘텐츠는 처음에 그야말로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오죽했으면 ‘인터넷의 바다에 빠져 길을 잃어 버린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러나 승객(네티즌)들이 즐겨 찾는 콘텐츠는 기차 혹은 인터넷에서나 마찬가지로 연예물과 뉴스가 대부분이었으며, 차츰 뉴스의 비중이 높아졌다.
기차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승객들은 새로운 형태의 동영상을 보게 됐다. 창밖의 풍경이 유리액자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런 역동적인 시각경험은 영화의 탄생을 예고한다.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로 영화를 처음 상영(1895년)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자 승객(네티즌)들은 지루해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욱 새로운 콘텐츠를 원했다. 이에 플래시(flash)·쇽웨이브(shockwave)·스트리밍(streaming) 같은 기술이 등장해 더욱 새롭고 자연스러운 그래픽과 동영상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철도가 사진기술과 어울려 영화를 태동시켰다면, 인터넷은 그래픽기술과 어우러져 다양한 인공현실(artificial reality)을 구현할 것이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만들어낸 이 새로운 시각경험은 ‘모니터’라는 새로운 창밖(안)에 콘텐츠를 보여줄 것이다. 마치 기차가 창밖에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