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설비 홍순엽 구매실장과 세보엠이씨의 김열수 구매팀장은 설비업계의 e비즈니스 전도사로 불린다. 정보기술(IT)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서가 아니다. 30∼40개가 넘는 현장과 200여개가 넘는 협력업체를 돌아다니며 ‘구매의 온라인화’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e비즈니스에 무관심한 현장 사람들과 직접 몸으로 부딪친다는 점에서 오히려 전사에 가깝다.
“보수적인 설비업계를 바꿔봅시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게 ‘구매’라는 업무만 줄곧 맡아온 오프라인 구매 전문가들이 손을 잡았다. 각각 우진설비, 세보엠이씨의 구매업무를 맡고 있지만 둘 다 명함에는 설비 e마켓플레이스인 설비넷 구매실장, 구매팀장으로 명시돼 있다. 한지붕 두 가족처럼 형식적으로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지만 하는 일은 우진설비와 세보엠이씨의 것으로 다르다.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대한설비협회 임원진이 주축이 돼 설비 e마켓인 ‘설비넷’을 설립하면서부터다. 그 후 우진설비와 세보엠이씨가 지난해 말 자사의 구매프로세스를 차츰 온라인화하기 위해 구매 총책임자인 홍 실장과 김 팀장을 설비넷에 파견했던 것.
그들의 주요 업무는 우진설비와 세보엠이씨의 구매업무를 설비넷을 통해 온라인화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설비업체의 구매업무 온라인화를 위해 뛰어다녀야 한다. 세보엠이씨는 4800여개 설비업체 중 시장점유율 1위 업체고, 우진설비는 5위 업체란 점에서 업계에 끼치는 파장효과는 클 것으로 기대되는데 그들을 전도사로 부르는 이유다.
“함께 일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온라인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홍 실장과 김 팀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인터넷이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지로 만든 셈이기 때문이다. 디지털경제가 도래하며 업무 제휴뿐만 아니라 인수합병 등이 숱하게 일어나면서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만도 하지만 아직은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설비업계에서 이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물론 서로가 모든 것을 공개할 수는 없다. 구매가격의 노출이 결국 회사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아직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설비업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e비즈니스가 살길이란 점에서는 공감한다. 그래서 오전에는 인터넷이란 가상세계를, 오후에는 건설현장을 휘젓고 다닌다.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우진설비에서 지난해 10월 설비넷으로 파견 온 홍순엽 실장은 오프라인에서 18여년간 구매업무만 맡아온 베테랑. 40대 후반에 들어서며 새로운 일이 하고 싶어 온라인 업체로의 파견에 자원하다시피 했다.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결국 온라인도 ‘사람관계’라는 확실함이 들면서 점차 자신감이 생긴다는 게 그의 소감이다.
“온라인 구매 효과요. 확실하죠. 당장 오전에 전화문의에 매달리던 때와는 달라졌거든요.” 13년간 구매업무를 맡아온 김열수 구매팀장은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12월 세보엠이씨에서 설비넷으로 파견 온 김 팀장은 솔직히 ‘e마켓의 미래’에 대해 반신반의하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란 점에서는 공감한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