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케이블TV 공생의 지혜

  ◆김동진 MBC드라마넷 국장 djk@imbc.com

 

 “누가 이 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고 했습니까.”

 지난 97년 중순 세계적인 다국적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다 케이블TV 사업에 참여하게 된 분이 업계 진입 3개월 만에 던진 질문 아닌 자조적인 탄식이다. 그가 말하길 케이블TV 사업은 특정 업체의 경영능력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구조적인 결함’ 때문에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예견(?)한대로 삼성·대우·현대·두산·동아·진로 등 당시 국내 자산 순위 1위의 기업을 비롯한 30대 대기업에 속한 그룹들은 케이블TV 사업을 주력사업에서 퇴출시켰다.

 케이블TV 사업 개시 8년째를 맞는 올해는 과연 이같은 ‘산업구조의 결함’이 초기보다 해소됐는가.

 아쉽게도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현재의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말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현재의 잘못은 과거에 기인하므로 과거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문민정부 당시 케이블TV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른바 비즈니스 모델을 정부가 미리 구상하고 시작했다. 그래서 이 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일부 언론은 표현했다.

 이른바 케이블TV방송국(SO)·프로그램공급업자(PP)·전송망사업자(NO) 등 3분할 사업구도는 이들 세 분야 사업자 전부를 정부가 구상한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다소 전제적인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특히 종합유선방송과 중계유선방송이 쉽게 융합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에 따라 3분할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중계유선방송의 위력을 너무 간과한 전략이었다.

 지방자치제도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듯이 중계유선방송이 풀뿌리 네트워크의 근간이라는 구조를 좀 더 현실적으로 이해했어야 한다. 정부 주도적인 사업 추진도 의미가 있었지만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청자 중심의 하향적인 참여를 유도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씁쓸함이 남는다.

 사실 정책적인 과오는 정부보다 민간기업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다. 특히 수천명의 우수한 인재들이 겪은 지난 7년간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대학을 나온 사람의 인건비가 한달 50만원 안팎인가 하면 무급 휴직도 허다하고 초기 사업 정착에 기여한 수많은 인재들이 이 업계를 떠나야 했다.

 물론 IMF 경제위기를 케이블TV 업계 인력만 겪은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의 80∼90년대 상황을 엿보면 케이블TV가 성장하고 정착한 데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가 기여했다는 역설적인 통계도 있다. 여기에는 불경기일 때 가장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여가 도구가 케이블TV라는 분석이 따랐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올해는 PP와 SO간 개별계약의 사실상 원년이다. 수신료 배분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인정이다.

 즉 PP는 콘텐츠 질을 높이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SO는 수신되는 채널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해서 합리적인 수신료를 지급해야 한다. PP는 이 수익을 다시 콘텐츠 개발에 투자하는 순순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자명한 일이다.

 현재의 가구수와 수입을 놓고도 ‘합리적인 배분’이 이뤄진다면 현재보다 두 배 이상의 콘텐츠를 케이블 망에 실을 수 있다.

 초우량기업의 비결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비상한 경영 아이디어에 있지 않다고 한다. 상식적인 과정을 얼마나 충실하게 이행하느냐가 비결이라고 한다. 과거 정부 주도로 시작한 산업 구조적인 결함으로 야기된 사업실패가 이제 민간사업자간 이전투구 양상으로 변질된다면 결국 타율적인 제재와 감시를 불러오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사업자간 공생의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