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HP 유원식 부사장 won-sik_yoo@hp.com
모두가 바라던 희망의 세기이자 인류기술의 새로운 막을 연 21세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밀레니엄 버그와 Y2K로 불리는 근심거리를 동반했다. 햇빛은 늘 양지바른 곳과 어두움을 함께 제공하듯 희망 또한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그늘을 만들어 낸다. 결국 세계 경제의 새로운 역사는 한국에도 많은 발전과 희망으로 활기찬 인상을 심어줬지만 한편으로는 섣부른 기대와 오해 등으로 많은 상처를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회면을 장식했던 많은 게이트와 모럴해저드라 불리는 도덕적해이는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우리나라와 경제계의 새로운 스타들에게 지난 산업사회 경제시대의 어두운 면들을 떠오르게 했고 다시 일어서는 뜻있는 벤처에 시련과 고난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시련과 역경의 모든 어려움은 다시 희망으로 극복된다’는 역사의 진실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장인정신은 무릇 어려움에서 시작됐으며 끝이 더욱 창대했음을 조선시대의 장영실로부터 헤아릴 수 있다. 비천한 출신의 관노에서 시작된 그의 인생은 대호군이라는 관직까지 올라가는 고진감래의 뜨거운 인생 드라마였으며, 그의 발명품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앙부일귀·측우기 등 역사적으로 훌륭한 유물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측우기는 서양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서 만들어져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과학정신과 기술 그리고 그를 뒷받침했던 따뜻한 역사가 있었음을 알게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현재 우리의 벤처의 모습에서 가장 본받을 인물과 사건이라 생각된다. 21세기 시대상황에서 양산된 많은 벤처기업은 시대의 소명의식과 진실한 엔지니어 정신의 부족으로 명멸해 갔다. 물론 거창한 시대상황을 말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기업들에 고객을 중심으로 한 기업의 기본 창업정신과 핵심기술에 기반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른 기업이 하니까 같이 시장에 편승하는 전략은 기업의 수명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 현재의 많은 어려움에서도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 가는 진정한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한 기업들은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다시 일어서는 우리의 벤처에 함께 고민하고 싶은 사항은 첫째,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간단한 비결은 진실한 장인정신임을 다시 한번 깨우쳐야 한다고 본다. 하나 하나의 어려움을 헤처나가는 것이 바로 벤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기본에 충실한 마인드로 반드시 재무장해야 한다. 일확천금으로 기업을 일구는 생각이 아니라 진실한 기업으로 일어서는 모습으로 다가와야 한다.
둘째, 시장환경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 정신이다. 이미 시장은 수요중심 체제이고 수요중심에는 마켓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방향 정립이 필요하며 시장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소규모 벤처기업의 특성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회사의 제품과 함께 연동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에 대한 안목을 가져야 한다. 기술은 좋으나 시장환경에 맞지 않아 외면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셋째, 사회에 대한 책무가 된다고 본다. 이미 새로운 21세기의 추진 동력은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환경기술 등으로 각 연구기관 등에서 앞다투어 말하고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의 핵심원으로 벤처기업이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새 환경에 대한 사회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지난 산업사회에서 우리나라의 뜻있는 기업들은 어려움에서도 나름대로의 수출에 대한 의지, 사회에 대한 책무를 이어왔으며 그러한 책무를 묵묵히 수행했던 많은 기업은 아직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세계화다. 지구촌에서의 한국은 매우 작을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의 국가 위상도 많이 높아졌다. 지금은 비록 작게 출발하지만 반드시 세계를 무대로 일어서는 웅지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정보기술에 대한 선진국 그룹으로서 자타가 인정해주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모습은 세계를 향한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2002년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이벤트를 앞둔 시점에 우리 사회는 다시 주춤하는 힘겨운 모습을 보이며 예측불허의 환경에 처해 있다. 발전은 늘 수직지향적 곡선을 보이지는 않는다. 어떨 땐 주춤하기도 하고 다시 전진하기도 해서 시간이 지나서 보면 결국은 발전하게 된다. 비단 한국경제만이 아니라 테러 이후의 세계경제는 신냉전과 신민족주의 또는 종교주의 등으로 경색의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미국 MIT에서는 콘드라디예프 파동설을 바탕으로 최근의 정치·경제·금융 데이터를 추가해 세계 경제는 2006년부터 침체기를 벗어나 성장기로 전환되며 2030∼2054년 다시 세계경제는 하향곡선을 그리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콘드라디예프 파동설이 21세기의 숙명이 될지 가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난 세기의 주기설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다시 힘차게 일어설 것인가. 우리의 벤처가 콘드라디예프의 주기설을 뒤집을 수 있는 힘과 역량으로 우리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