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패러다임이 바뀐다>(8·끝) 구조조정의 오해

 빌 게이츠는 왜 자신과 동의어와도 같은 ‘IT’라는 단어를 두고 굳이 ‘생각의 속도’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을까.

 빌 게이츠는 예언자였다. 자신이 살아온 20세기와 살아갈 21세기를 하나로 요약한 단어, 그것이 바로 인간의 상상력, 생각이었다. 인간의 생각이 현실로 구현되는 사회, 남보다 빠르게 생각하는 사회. ‘생각의 속도’는 세계 최고의 벤처기업가로 성공한 빌 게이츠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예언서였다.

 ◇구조조정의 오류=IMF 이후 우리 사회는 구조조정 바람에 휩싸였다. ‘줄여야 산다’는 기업과 우리 사회의 명제였다. 회사는 인력 및 각 부문에 대한 인력, 조직 축소작업에 들어갔다. 작은 조직, 적은 인원으로 효율적으로 수익을 극대화하자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IMF의 잔혹한 고통도 서서히 사라졌다. 하루가 다르게 첨단기술이 개발됐고 이에 따라 서비스, 각종 제도, 기업의 통합이 이어졌다. 네트워크 발전이 일어나면서 산업간, 국가간 경제의 틀도 무너졌다. 분산의 시대에서 통합, 융합의 시대로 급격히 변모했다.

 별도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두개의 기업이 네트워크로 묶이면서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 2, 3차 산업에 대한 영역도 붕괴됐다. 바로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이러한 통합의 시대에 구조조정은 분명 필요했다. 그러나 단순한 인원줄이기, 조직축소만으로는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는 21세기에는 적응할 수 없었다. 얼마만큼의 인력과 비용, 조직을 줄였느냐로 평가되던 구조조정은 패러다임 전환기에 미래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헤매기 일쑤였다. 인원과 조직축소에는 성공했으나 기업의 재기, 흑자전환에는 실패한 기업들이 늘어났다.

 구조조정의 오해에서 비롯된 실패였다. 사회 곳곳에서 축소지향형의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구조조정은 축소가 아닌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자성론도 일었다.

 구조조정은 단순히 인원줄이기가 아닌 조직보강, 수익모델 개발, 분산과 집중에 의한 경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방법론도 등장했다. 분사, 조직 슬림화가 제역할을 발휘하려면 모든 사업영역을 통합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하며 사업영역마다 특징을 감안한 운영체계가 필수적이라는 인식도 확산됐다.

 사실 구조조정의 본질은 조직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있다. 무분별한 조직축소는 사업의 축소를 가져올 뿐 수익을 극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쉬운 구조조정 방안은 조직과 인력을 감축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구조조정은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라는 모 통신사업자 CEO의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변혁은 시작됐다=최근 정보통신산업은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전체 산업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부가가치 측면에서도 정보통신산업은 이제 명실상부한 기간산업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보통신산업의 진화를 제도와 법이 따라가 주지 못해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역시도 현재 진행중인 통합을 활성화하고 시장의 기능을 더욱 확산할 수 있을 때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또하나의 대안을 내놓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구축된 전대미문의 진화된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새로운 기술을 과감히 도입하고 전세계 정보통신시장의 테스트베드를 스스로 자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선진기술을 습득, 상용화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복합기술을 해외에 역수출하는 전략도 고려해봄직하다. 우리는 이미 CDMA를 통해 이러한 방법의 타당성을 검증받은 바 있다. 물론 정보통신산업계는 수입의존도가 높은 제품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원천기술 개발, 핵심부품, 장비개발에 나서야 함은 당연하다.

 ◇이제 시작이다=패러다임의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60년대부터 이어져온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이 양적 팽창과정이었다면 지금은 질적 전환이 이뤄지는 단계다. 우리는 폭넓게 확충된 산업기반을 토대로 새로운 수익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구조조정의 단계에 와있다.

 다만 지금부터의 구조조정은 인력과 사업부문을 줄여 아예 미래비전조차 사라지게 만드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21세기 산업패러다임에 맞게 사람과 회사와 사회전체의 목표의식을 재조정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