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3월. 뭔가 새로운 일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에 가슴 설레이는 3월, 오히려 몸이 처지고 졸음이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봄나물을 먹고 에너지를 충전하거나 비디오를 보며 여유에 젖어보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가 아닐까.
마침 이달에는 한국영화에 돌풍을 일으킨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가 출시된다. 스탠리 큐브릭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A.I.’도 다시 볼 수 있다. 줄리아 로버츠, 캐서린 제타존스, 존 쿠색, 빌리 크리스털 등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로맨틱 코미디 ‘아메리칸 스윗하트’를 보며 달콤한 상상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아름다운 재즈의 선율, 앤디 가르시아의 ‘리빙 하바나’를 보면서 쿠바의 정취도 맘껏 느껴보자. 참,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놓쳐서는 안된다.
오랜만에 광활한 실크로드 위에서 펼쳐지는 정통 무협물에 심취하고 싶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플라잉 드래곤’이다. 배신과 복수, 의리와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플라잉 드래곤’은 ‘무사’와 ‘와호장룡’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스케일과 결합돼 재미를 더하고 있다.
명나라 말기의 고비 사막. 천하에 맹위를 떨치던 육정양은 의형제 교웅의 배신으로 가세가 몰락하고 자식까지 잃는다. 아내 유여연은 남편의 무심함에 헤어지기로 하고 혼자 복수할 것을 결심한다.
20년이 흘러 유여연은 죽고, 대신 우연히 알게 된 젊은 협객 백소호가 그녀의 유언을 좇아 교웅의 아들을 죽인다. 육정양과 교웅도 숙명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홍콩이 배출한 월드스타 홍금보의 시원한 액션, 홍콩 영화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여배우 양정의 매력이 그만이다.
‘A.I.’는 스탠리 큐브릭과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세기의 거장이 이뤄낸 SF 걸작. 환상과 꿈, 경이와 순수를 스크린 안에 투영해 내는 할리우드의 마법사 스티븐 스필버그, 악명높은 완벽주의자이자 고집스런 기인으로 불리는 스탠리 큐브릭, 이들이 공동으로 작업했다는 사실만으로 전세계 영화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작품이 바로 ‘A.I.’다.
천재 아역배우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연기도 단연 일품이다. ‘식스 센스’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아역배우라는 타이틀을 무색케 하는 섬세하고 노련한 연기로 관객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는 평이다.
인공지능을 가진 미래 캐릭터에 진짜 인간이 되고픈 로봇 소년의 이야기를 접목시킨 ‘A.I.’는 돌비 디지털 5.1채널로 재생된 환상적인 마력의 사운드, ILM이 작업한 특수효과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불면증으로 밤낮이 뒤바뀐 한 남자에게 벌어지는 사건과 음모를 다룬 ‘데드 어웨이크’도 추천할 만한 액션 스릴러물이다. 특히 불면증이라는 독특한 모티브, 그리고 주인공 데스먼드역을 열연한 스테판 볼드윈의 고난이도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밤산책 도중 한 남자가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데스먼드는 실수로 시계를 가져간다. 이후 데스먼드는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몰리게 되고 신변 위협까지 가중된다. 죽은 줄 알았던 남자를 목격하지만 담당 형사는 복권이 당첨되자 경찰을 그만두는 어이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극장 흥행에 성공한 ‘두사부일체’와 ‘달마야 놀자’도 출시된다.
전국 350만 관객을 끌어모은 ‘두사부일체’는 화끈한 액션물로 그만이다.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 등 조폭 소재 영화가 막차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한 셈.
가방끈은 짧으나 싸움을 잘 한다는 긍지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는 중간보스 계두식이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기 위해 벌이는 해프닝이 코믹하게 전개된다. 정준호, 정웅인, 정운택, 송선미, 임창정의 자연스런 코믹연기가 영화에 배어 실감을 더해준다.
박철관 감독의 ‘달마야 놀자’는 탄탄하게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최강의 캐스팅 파워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건달과 스님이라는 전혀 다른 두 계층의 사람들이 벌이는 좌충우돌의 대치상태를 그린 ‘달마야 놀자’는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따뜻한 휴머니즘에 젖게 돼 단순한 코미디물의 차원을 넘어선다.
액션 스릴러물, 코미디물로 한껏 고조된 분위기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싶다면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리빙 하바나’를 추천하고 싶다.
르네 젤위거, 휴 그랜트, 콜린 퍼스 주연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로맨틱 코미디로 봄날 상큼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로맨틱 코미디로 꼽히는 ‘네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힐’의 제작자 팀 베번과 각본가 리처드 커티스 콤비가 다시 뭉쳐 만든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독신여성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브리짓 신드롬’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서른 두 살의 브리짓 존스는 완벽한 남자를 만나겠다는 희망을 간직한 채 다이어트에 몰두한다. 파티장에서 인권 변호사 마크 다아시를 소개받는데, 브리짓은 우연히 자신을 가리켜 골초에 알코올 중독자라고 험담하는 것을 듣게 된다. 이제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일기를 써 나가기로 한다.
이제까지의 순진한 캐릭터를 벗고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로 분한 휴 그랜트, 그리고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르네 젤위거도 볼 만하다.
자유를 사랑한 재즈 뮤지션과 혁명을 사랑한 여자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리빙 하바나’. 현존하는 최고의 재즈 트럼펫 연주자 아투로 산도발의 실화를 영화화한 것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라틴계 스타 앤디 가르시아의 연기가 돋보이는 역작이다.
89년 아투로 산도발의 트럼펫 선율과 청중들의 환호성으로 메워진 아테네의 한 재즈 공연장. 공연이 끝난 후 쿠바에서 미국으로의 망명요청을 위해 아테네주재 미 대사관에 간 아투로 산도발은 면접 도중 아내 마리아넬라와의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며 아투로 산도발의 클래시컬한 연주와 디지 길레스피의 신선하고 세련된 비밥 재즈에 흠뻑 젖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