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IT문화를 만들자>(9)부익부 빈익빈

 정보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더이상 물건을 사기 위해 다리품을 팔며 시장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편지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을 찾지 않아도 된다. 멀리 태평양 건너 미국에 살고 있는 친지들과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것만으로 길목 좋은 시내 중심가에 가게를 차리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 왔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정보화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않은 게 현실이다. 이들은 때로는 불충분한 소득 때문에, 때로는 IT인프라가 보급되지 못하는 주거지역의 특성상 정보화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제반 환경 때문에 정보화에서 소외된 계층들은 단순히 정보화의 혜택을 얻지 못하는 차원을 넘어서 다른 이들에 비해 그만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마치 부유층이 빈곤층에 비해 물질적인 면에서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대도시 사람들이 농어촌지역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문화생활을 즐기며 살아가듯이 정보화시대에서도 이른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한국정보문화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월평균소득이 400만원 이상인 가구의 컴퓨터 보급률은 91.7%인데 반해 100만원 미만의 가구는 47.9%만이 컴퓨터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도 대도시의 컴퓨터 보급률은 81.8%로 90%에 가까운 반면 중소도시는 78%, 읍면지역은 69%로 지역 단위가 낮을수록 보급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3년간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빈부간·지역간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다각도로 전개됐음에도 아직 별다른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빈부간·지역간 정보격차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은 평등사회로의 진입을 가로막고 나아가서는 사회의 갈등 요인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다.

 집에 있는 최신 사양의 컴퓨터로 초고속 인터넷서비스망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사람과 인터넷 검색을 위해 동네 PC방에 가야 하고 이마저 비용부담 때문에 자주 갈 수 없는 사람간에는 분명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에서 차이가 난다.

 이러한 정보접근의 차이는 정보 획득의 차이로 이어져 점점 더 많은 고급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현 사회에서 곧 사회적 격차로 이어지게 된다. 정보가 자산인 디지털세상에서 빈부격차가 정보격차를 낳고 이러한 정보격차는 다시 빈부격차로 이어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악순환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지역격차도 마찬가지다. 초고속통신망마저 깔리지 않는 산간·도서지역에서는 PC방도 찾기 힘들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쩌다 읍내에 나가는 날에나 PC구경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과 비교해 집을 나서기만 하면 PC방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도시 사람들은 당연히 정보화면에서 앞서 나갈 가능성이 높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정보화교육 운동을 벌여오고 있는 YMCA의 한 관계자는 “정보사회에서 정보에 접근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라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던 저소득층과 농어촌 주민들이 정보화를 수용하지 못해 정보사회에서 또다시 주변부에 남아야 한다면 이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정보사회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되풀이된다면 이는 사회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불안요소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기술의 특성상 소득·지역차로 인한 정보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고 이를 빨리 되돌리지 못한다면 정보화 수용자와 비수용자 두 그룹으로 사회가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양대학교의 윤영민 교수는 “앞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고급정보의 양이 더욱 늘어날 것이고 이에 접근하지 못하는 계층은 점점 뒤처지게 될 것”이라며 “더이상 격차가 벌어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나눔의 문화가 필요하다.’

 정보격차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는 물론 민간기업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단순히 ‘보여주기’식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사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비록 사회 전체가 정보격차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고무할 만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실적위주의 사업으로 변질된 경우는 오히려 악효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소득층에 대한 정보화 지원사업의 경우는 수혜자들의 자존심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보여주기식 지원사업에 대한 경계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홍보성 사업은 피해야 한다=대부분의 기업들이 벌이고 있는 정보화 지원사업의 이면에는 자사의 이미지 개선 같은 홍보 차원의 목적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이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상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보다는 자사가 어느 지역에 몇 대의 컴퓨터를 제공했느니 하는 단순 실적에 매달린다면 이는 정보화 지원사업이 아닌 제품광고에 불과할 것이다.

 △정부의 유인책이 필요하다=정보격차는 정부 혼자서 풀어나가기엔 너무 어렵고 힘든 문제다. 따라서 민간기업들의 협조가 필요한 게 현실이다. 어차피 민간기업의 지원이 필요하다면 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기업들이 정보화 지원사업을 위해 제공한 자금에 대해서는 세제감면을 해준다거나 다양한 포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기업들의 정보화사업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유인책이 제시돼야 한다.

 △나눔의 문화가 가장 중요하다=자금지원,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나눔의 문화’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보격차가 단순히 특정계층, 특적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에서 기업, 학계, 민간단체에 이르는 사회 전체가 정보격차 해소에 대한 인식을 같이해야 한다.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행하고 기업은 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정보격차 해소 노력에 동참하고 학계와 민간단체도 정보기술이 가져다준 혜택을 나눠 갖는데 공감한다면 정보화시대에서는 ‘빈인빈 부익부’ 현상이 사라질 수 있다.

 

◆인터뷰-정국환 행자부 행정정보화계획국장

 “정보격차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지원 계획을 세우고 인프라 보급과 함께 정보화 교육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간다면 ‘정보격차’라는 말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역간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지난해부터 ‘정보화 시범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는 행정자치부의 정국환 국장(행정정보화계획관)은 쉽게 봐서도 안되지만 해결하기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게 정보격차 문제라며 꾸준한 노력을 전개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국장은 “농어촌 지역의 정보화 수준도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대도시의 정보화 수용 속도에 비해서는 아직 뒤처지고 있다”며 “특히 농어촌 지역은 통신망을 비롯한 정보 인프라가 보급되기 힘들고 대부분의 가구가 소득이 높지 않아 컴퓨터를 구매하기 힘든 경우도 많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 국장은 이같은 지역간 정보격차가 사회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범사회적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국장은 “일부 산간·도서지역의 경우 수익성을 이유로 초고속통신서비스 지원을 꺼리고 있는 통신사업자들도 인식을 바꾸고 정보격차 해소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정 국장은 인프라 보급 외에 정보화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농어촌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컴퓨터와 인터넷을 활용해 소득향상이나 생활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인지도가 부족해 정보화 속도가 더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을 통한 농수산물 판매, 특산물 홍보 등을 통해 실제 농어촌 가구의 소득을 올리도록 유도해 농어촌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정 국장은 “지난해 8월 전국 19개 마을을 정보화 시범마을로 1차 선정한 후 지금까지 지원사업을 벌인 결과 정보화를 직접 체험한 관내 주민들의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올해는 대상 마을을 100개로 늘려 더욱 많은 지역의 주민들이 정보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