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세계화/쟝-피에르 바르니에 지음/한울 펴냄
오늘날 ‘문화’라는 단어는 여러 분야에서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최근 몇 년간 우리가 자주 접한 화두 중 하나가 바로 ‘문화의 세계화’다. 문화의 세계화는 젠 스타일이나 타이타닉 같은 영화가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현상 자체만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일까. 문화의 세계화 이면에 숨겨진 다른 의미나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가 내포돼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을 비롯해 문화라는 단어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쟝 피에르 바르니에의 저서 ‘문화의 세계화’를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애매모호했던 문화의 개념을 명쾌하게 정의할 뿐 아니라 문화의 세계화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문화의 세계화는 특정한 문화가 만들어낸 문화상품의 세계시장 진출과 석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맥도널드와 코카콜라를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먹을 수 있고 할리우드의 영화와 팝음악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에 의해 세계화가 달성됐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각국의 문화가 적절한 배치를 통해 건설하는 다원적 문화 또한 문화의 세계화는 아니다. 이는 말 그대로 문화의 다원화, 다양화일 뿐이다.
그렇다면 문화의 세계화란 무엇인가.
문화의 세계화는 전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문화의 건설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주는 보편적 문화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결국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문화의 세계화란 문화상품의 세계화를 지칭하며 시장의 확대만이 그 목표일 뿐 진정한 의미로서의 문화의 세계화는 결코 아니다. 문화와 문화산업을 동일시하는 착각, 이는 자본가의 탐욕스러움에서 비롯된 잘못된 논리다. 문화산업과 상품, 시장의 개념이 난무한 가운데 정작 문화는 실종되고 만다. 엄밀히 문화적 관점에서 존재하는 문화의 세계화는 없으며 이는 문화상품 시장이라는 경제적인 관점에서만이 이해가 가능하다.
이렇듯 쟝 피에르 바르니에는 경제주의 관점에서 문화의 세계화라는 화두가 가지는 한계를 비판한다.
관점의 전환은 같은 현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한다. 우선적으로 문화와 문화상품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문화는 문화상품이 되기 이전에 특수한 지리적·사회적 환경 속에서 장시간에 걸쳐 형성돼온 역사적 산물이다.
특히 문화는 구체적인 재화이기 이전에 구성원의 삶에 이정표를 제시하는 생활양식이다. 문화는 특정한 지역과 그 지역에 살고 있는 구성원을 상정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문화는 지역적 특수성에서 출발한다.
한 개인이 특정한 사고를 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언어와 관점이라는 문화적 요소를 습득했기 때문이다.
반면 경제활동은 인간이 사회적 주체로 형성된 후 의도적으로 계획되고 진행되는 2차적 활동이다. 이 과정에서 문화는 바로 그 의식을 형성하는 요소로 이미 존재하는 여러 문화를 포괄하는 보편적 문화를 자의적으로 조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동일한 문화상품의 전세계적인 사용은 가능하지만 동일한 문화의 세계화는 가능하지 않다. 문화의 세계화는 세계화된 시장 속에서 동일한 문화상품이 세계인에 의해 소비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문화산업에 의해 통일돼 가는 문화상품의 세계시장과 차이를 간직한 채 독자성을 유지하는 지역문화 사이의 갈등과 긴장관계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는 쟝 피에르 바르니에의 ‘문화의 세계화’는 자국문화를 보호하는 문화정책과 지역적 특수성에 근거한 문화수용의 자세에 관한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특히 결론에 해당하는 책의 말미에서 제기된 공정한 세계적인 문화교류를 가능하게 해줄 국제기구의 필요성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문화를 생산하고 향유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를 되찾게 해줄 구체적인 길로 받아들여진다. 나아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의 세계화’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을 제공해주는 것이야 말로 이 책 속에 숨겨진 매력이 아닌가 싶다.
<연세대 김영용 교수 y2k@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