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배우 출신 동물보호가인 브리지트 바르도가 최근 한국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성명을 통해 “한국인들이 개와 고양이를 끔찍한 환경에서 키우다가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팬 뒤 내다팔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제여론이 한국제품을 사지않고 우리의 주장을 지지하는데 힘을 결집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또 프랑스 축구 대표팀에 대해 ‘어떤 문화도 정당화할 수 없는 이 같은 고문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힐 것을 촉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모든 일을 했고 이제는 그들의 지갑에 타격을 줄 계획”이라면서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두고볼 것”이라고 말했다.
문명은 우월 혹은 열등으로 구분될 수 없다. 특히, 생존과정에서 자리잡은 생계형 문화인 음식문화에 대해서는 누구도 상대를 섣불리 비판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개고기 문화’에 대한 브리지트 바르도의 비난은 많은 안타까움을 준다. 그것은 곧 힘의 문제로 인식되고, 우리에게 새로운 각성을 요구한다.
우리의 ‘개고기 문화’에 대한 브리지트 바르도의 비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지속적인 비판을 가해왔고, 우리나라 모방송사와의 전화인터뷰 중 전화를 끊어버리는 무뢰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는 별도로 프랑스의 제2방송 TF2와 미국 워너브러더스(WB)11 방송도 우리의 ‘개고기 문화’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시각으로 사실을 왜곡, 과장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코요테’라는 야생동물이 개고기로 둔갑을 했고, 교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방송사의 악의적 보도가 우리를 더욱 분노케 했다.
이때 우리의 네티즌들이 사이버 상에서 시위를 벌였다. 브리지트 바르도의 홈페이지와 두 개의 방송사 홈페이지를 공격했다. 폭탄메일이었다. 폭탄메일은 다량의 메일을 동시에 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하게 하여 과부하로 인한 서버의 다운을 일으키는 것으로, 상대의 정보망을 파괴한다는 의미에서 사이버테러, 사이버전쟁으로 불리는 사이버 시위의 일종이다. 그 결과 워너브러더스11 방송사의 홈페이지는 두 번이나 다운되었고, 프랑스의 제2방송은 두려운 나머지 한동안 외부접속을 차단시켜 놓기에 이르렀다.
지난 2월 21일 미국의 유타주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전이 열렸다. 이 경기에서 김동성 선수가 오심으로 금메달을 뺏기자 사이버 공간에서 네티즌들은 다시 분노했다.
판정 번복을 요구하는 의견부터 사이버 시위를 선동하는 글까지 다양한 의견들을 쉴새없이 쏟아냈다. 극단적인 반미운동과 함께 급기야는 폭탄메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를 12시간 동안 다운시켜 버렸고, 미국올림픽조직위원회(USOC)의 홈페이지도 9시간 동안 완전 마비시켜 버렸다.
자원빈국 국가의 핵무기가 생화학무기라면 우리나라의 핵무기는 사이버 군사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이버 군사 대국이다. 재래식 무기 기준의 군사력은 세계 6위(영국 왕립 합동군사연구소 분석)이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정보통신 강국 우리나라의 사이버 군사력은 세계 최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이버 전투력은 인구의 절반을 넘는 2680만명의 PC인터넷 사용자가 상비군으로 있으며, 휴대폰 등 무선인터넷 이용자 2387만명이 기동타격대로 존재한다. 한주간 인터넷 이용시간이 10.2시간으로 군사훈련 시간도 수준급이다. 외형적인 군사력은 전통적인 군사강국인 미국 등에 뒤질 수도 있지만 집중력과 자발성, 기능성과 순발력 등 질적인 측면에서의 전투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우리의 사이버 전투력은 크고 작은 대 일본전을 치르면서 크게 향상되었다. 2000년 하반기부터 ‘독도영유권 주장’ ‘역사교과서 왜곡’ ‘고이즈미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등 일본의 도발에 맞서 수 차례의 국지전 및 전면전을 치렀고, 그 전투를 통해 실전경험을 쌓았다. 당시 일본의 언론사와 정부기관의 정보망은 우리의 사이버 공격에 초토화되어 수 시간동안 서버가 다운되는 피해를 당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 선수가 부당한 실격판정에 대한 항의에서도 우리의 네티즌들은 그동안 쌓은 전투경험을 적극 활용,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특히 2월 21일 자정에는 화력을 총집결, 솔트레이크 공식홈페이지와 미국 언론사 홈페이지에 집중적인 포격을 가하여 그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켜버렸다. 개별 시위 지휘소와 연합시위 사이트가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시위 날짜와 방법을 정하고, 목표를 정했다. 진행과정을 중계하고 전투원 누구든 지휘자가 되어 프로그램 제작, 시위대상 사이트 소개, 외국자료 번역 등 임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자발적이며 조직적인 사이버 공격을 통해 IOC와 NBC 등 거대한 사이트를 접속불능 상태에 빠뜨릴 수 있었다.
최근 발생한 사이버 시위과정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문화현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안티 오노’ 등 관련 커뮤니티가 각 사이트마다 수백개씩 개설됐고, 회원도 수십만명에 이르렀다. 네티즌들은 그곳에서 분노하고 토론을 벌였다. 시위 속보를 올려 정보 전파소 역할을 수행했으며, 적에 대한 전투의지를 불태웠다. 이어 네티즌들의 항의는 온라인에서 벗어나 미국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오프라인 실력행사로 발전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회사의 음식판매점 매출감소는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다.
시위과정에서, 전투에 불을 붙이는 데 한몫을 한 비난 메시지도 영화포스터 패러디, 유행가 개사, 신곡 작곡, 드라마나 코미디 대본 바꾸기, 유머러스한 신조어 창작,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작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만들어졌고, 품위있게 활용되었다. 이들 ‘작품’은 시위에 가속력을 더하고, 신세대 네티즌의 재치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도 하나의 네티즌 문화현상으로 인식할 수 있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전화를 통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그들은 사이버 시위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우리처럼 각 가정마다 초고속인터넷 회선이 수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초고속인터넷 회선의 세계 최고 밀집도를 보이고 있는 우리가 모두 한마음이 되어 전투를 벌인다면 세계 어떤 대형 서버도 순식간에 초토화시켜 버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먼저 보고 먼저 결심하고 먼저 공격하는 현대전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이며, 특수전(해킹)에서도 결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아무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이버 전투력은 분명 힘이다. 그 힘을 통해 나라가 하지 못하는 시위를 통해 통쾌함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이버 시위가 결정적인 순간에도 우리의 무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인가.
한번만 되짚어본다면 그것은 진정한 힘이 아니다. 사이버 전투를 위한 최고의 환경을 갖추었지만, 그 환경을 이용하는 능력에서는 아직 세계 최고가 아니다. 무한대의 활용성에 일부분만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상황에서 그 환경을 돈으로 만드는, 외국의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비즈니스 무기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힘이 아니다.
만일 그것이 힘일지라도 우리의 힘을 감출 필요가 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무기를 섣불리 사용하게 되면 상대는 더 강력한 방어체제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면은 물론, 의식에서도 방어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그 의식은 사이버 상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상황에서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나라를 이롭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너무 작은 일에 목숨걸지 말고 좀더 큰 일에 활용하자는 이야기다.
우리의 정보통신 능력은 비장의 무기,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확실한 무기로 활용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 가치를 확신한다면 비장의 무기를 숨기고, 지속적으로 갈고 닦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 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