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쟁력이다>(10)좌담회

사진; 기업경쟁력의 핵심인 인력양성 방안에 대해 이경수 대덕밸리벤처연합회장, 백일승 재미시스템개발 사장, 유순신 유니코써어치 사장, 정석균 정보통신부 IT인력정책과장 등이 토론하고 있다.

국가와 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은 사람이다. 우리나라가 세계가 부러워하는 IT강국이 된 것도 순전히 사람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IT업계는 고급인력 부족, 인력수급 불균형 등과 함께 연구인력이 마케팅으로 내몰리는 등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본지는 ‘사람이 경쟁력이다’라는 연중 시리즈 중 기업편을 마치며 정석균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국 IT인력정책과장, 유영민 LG전자 CIO, 유순신 유니코써어치 사장, 백일승 재미시스템개발 사장, 이경수 대덕밸리벤처연합회장 등 각계 전문가를 초청, IT인력에 대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나아갈 바를 모색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편집자

 

 ◇백일승=한국IBM에서 18년간 근무하다가 3년 전 벤처기업인 온라인게임회사로 옮기게 됐습니다. 양쪽을 경험해본 사람으로 외국기업과 벤처기업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외국기업과 벤처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술과 경험축적시스템, 인프라의 유무입니다. 벤처기업들은 인프라를 갖추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일하고 있어 한명의 인력이 이탈했을 때 프로젝트 전체가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유영민=벤처기업 못지않게 대기업들도 IT 전문인력 확보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고급 IT인력을 수급하기 위해 직접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나가 인력을 채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은 아무리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한국에서 아무리 많은 연봉을 제시한다 할지라도 이쪽에 취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우수인력이 한국에서 경력을 쌓게 되면 추후 다른 직장이나 직업을 가질 때 좋은 경력사항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경수=얼마전 지방 국립대의 재료공학부 커리큘럼 재편을 위해 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70년대 제가 배우던 똑같은 커리큘럼이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도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수되는 걸 보며 왜 이렇게 IT전문인력이 부족한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력교육의 최일선에 있는 대학에서부터 우리의 인력은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현재 대학교육 프로그램은 급변하는 IT인프라와 정책, 기술 등 모든 측면에서 현장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특히 대학교수들은 반도체기업의 현장에 대해 알려 하지도 않으며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기업의 핵심 인력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우수한 학생들이 현실과 괴리된 교육을 통해 경쟁시대 낙오자로 졸업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석균=대학교가 산업화 현장을 수용하는 역할과 아카데믹한 역할 중 어느쪽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가에 대해선 의문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신입 인력이 3개월이나 수습기간 동안 전문분야에 적응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대학과정을 정상적으로 받은 사람이 본질적으로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을 모른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대학 커리큘럼에 영어회화라는 과목이 있다고 영어회화를 능통하게 하는 인력이 양성되지는 않습니다. IT교육도 마찬가지로 단지 교과과정에 과목이 개설된다고 해서 전문인력이 양성된다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

 ◇유순신=헤드헌팅 사업을 10년 해오면서 국내인력과 외국인력의 차이점을 느끼게 됐습니다. 조직적 인력관리로 정평난 외국계 회사들은 국내에서 상위 10위권 이내의 대학을 나온 인력과 외국에서 중위권 대학을 나온 인력이 있다면 외국 대학 인력을 선택합니다. 국내 인력들이 정해진 일은 잘하지만 조직을 형성평있고 짜임새 있게 관리하지 못하며 창의적인 발상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백일승=국내 IT기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고급인력부족 현상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있어 밑그림을 짜임새 있게 그리고 해당 분야에 필요한 능력을 겸비한 인력을 찾아내 배치할 수 있는 빌 게이츠 같은 아키텍터가 부족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이제 프로그래머에서 아키텍터로 변신했습니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밤새워 개발한 인력은 넘쳐나지만 프로그램의 구조를 결정하고 어떤 방향으로 과정을 진행시켜야 할지 지휘할 수 있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유순신=아키텍터는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외국기업은 국내 상위 10위권 대학 출신보단 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인재를 선호합니다. 특히 외국계 회사에서는 사람 채용시 전공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전문인력으로 매니저를 양성하는 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입사한 직원들은 경영자나 특정분야 전문가의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강화하는 게 외국계 회사의 인력양성 방법입니다. 이에 따라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가 중요한 국내와 달리 해외는 어떤 회사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경쟁력 있는 인재로 성장 여부가 판가름나고 있습니다.

 ◇유영민=사실 국내 대기업들조차 개인별 직업경로를 어떻게 설정해 줘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이 없습니다. LG전자는 입사 3년차 정도가 되면 개인육성체계를 마련하기는 하나 미흡한 실정입니다. 직원의 특성에 따라 경영자로 성장시킬 인재와 전문 엔지니어로 직업경로를 나눠주는 정도입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장 부족한 인력은 어떤 솔루션이나 개발 프로젝트를 하면 전체 프레임을 짜는 인재입니다. 누구한테 던져줄 것인가에 대한 임무를 지정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프로젝트를 관장하고 진행속도를 컨트롤하는 것은 물론 개개인의 역할을 명확히 지적해 줄 수 있는 매니저 인력이 가장 부족합니다.

 ◇이경수=지방기업은 특히 인력난이 심합니다. 아니 인력 공황상태입니다. 아키텍터나 매니저가 없다는 것은 영화로 말하면 연출가가 없는 상황입니다. 대학뿐만 아니라 기업도 인력양성에 책임져야 합니다. 아직까지 국내 기업들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방기업은 이런 얘기를 할 여지가 없습니다. 국가 전체의 고급인력이나 경력자는 서울에 몰려있고 지방기업의 조건에 대해는 아예 알려하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지방기업은 다른 나라처럼 차별받고 있습니다.

 ◇유순신=3D업종이란 말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근거지로부터 거리가 멀면 취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져 거리(Distance)가 하나 추가돼 4D가 됐습니다. 인력들은 조건이나 임금이 높아도 지방에 위치한 기업보다는 서울권 내 기업을 좋아합니다.

 ◇유영민=이런 현상은 지방에 IT를 활용할 수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방 전산실 등에는 IT인력에 대한 수요가 없어 인력양성 힘든 것입니다.

 ◇정석균=본인이 어디에서 일한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오케스트라에서 혼자 연주한다면 완벽한 화음이 이뤄지지 않듯이 지방에 기업을 할 수 있는 인프라와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제반시설이 갖춰져야 인력이 모입니다. 이런 이유로 서울 집중화 현상이 가속되고 있으나 인위적으로 인력을 지방으로 보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유영민=기업에는 프로젝트를 운영할 핵심 매니저와 각종 코딩 등 단순한 IT작업을 하는 엔지니어 등 다양한 인력이 필요합니다. LG전자는 부족한 IT인력 수급차원에서 인도를 비롯한 러시아 등의 프로그램 전문가를 고용해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외국계 인력을 채용한 후 국내 직원들의 경쟁심리도 높아져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습니다. 또 인도 인력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인력을 해외에서 수급하는 것도 국내 경쟁력 강화의 한 방법입니다.

 ◇정석균=기업은 인력의 능력을 재충전시켜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면서 인력이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기업에 이익이 되는 정책을 구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삼성은 부족한 인력을 해외에서 수급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등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현지인력을 채용하고 그 결과물을 가져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지에서 개발해서 가져오는 것은 아직은 어려운 현실이나 그런 방법도 인력부족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정부는 IT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대학생들의 학기중 인턴십을 증가시킬 예정입니다.

 ◇이경수=인턴십을 4학년에 하는 것은 늦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졸업후 진로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자신의 직업경로를 설정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 기업의 인턴십 프로그램이 경쟁력 있는 인력양성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짜여지는 것도 급선무입니다.

 ◇유순신=인력 활용방법에 항상 등장하는 것이 여성인력 활용입니다. IT기업이 증가하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는 출중한 여성의 능력은 인정하나 기업에 채용하는 것은 꺼리는 분위기입니다. 사회적으로 전문적인 여성인력 양성에 대한 정책과 마인드가 부족합니다.

 ◇백일승=벤처기업은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 비교해 여성인력의 근무환경이 열악합니다. 특히 국내는 개인적인 성공에 인적 네트워크가 크게 작용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내 승진시스템이 그런 것을 뒷받침해주지 못해 여성인력이 도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경수=세계적인 과학자로 남으려고 결혼하지 않고 일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가정과 사회생활을 모두 잘할 수 없기 때문에 가정생활을 포기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길을 택한 사람입니다. 이런 구조는 사회가 시스템적으로 풀어줘야 할 문제입니다. 대덕밸리벤처연합회는 능력있는 기혼여성을 위해 보육시스템을 만들 계획입니다. 최근 대전지역에서는 해외에서 유학했던 고급 기혼 여성인력을 파트타임제로 사용해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여성인력 활용의 최우선문제는 기회제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일승=인터넷과 ADSL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국내 IT경쟁력이 높아졌습니다. 외국계 지사장들은 매출실적이 좋지 않을 때 본사에 한국 벤처기업엔 병역특례라는 제도가 있다는 점을 보고합니다. 국내 벤처기업은 병역특례라는 제도 덕택에 우수한 인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병역특례에 대한 수혜범위가 좁아 이를 넓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난해부터 2년 근무 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던 병역특례 직원이 1년 후에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서 벤처기업은 1년 안에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하는 부담감이 높아졌습니다.

 ◇유순신=최근 많은 벤처기업들은 정보통신이나 바이오, 나노, 소재 등 소위 뜬다 하는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 인력 부족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지속적인 사업계획을 갖지 않은 것이 인력난은 부추기고 있습니다. 기업은 IT인력양성을 위해 인력개발팀을 구성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기업은 인재의 채용에서 능력의 계발, 교육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할 때입니다.

 ◇유영민=인력양성의 핵심은 어떤 분야에 집중할 것인가입니다. 핵심 인력양성 육성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계획없이 인력을 양성하기보다 수요에 따르는 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대기업들은 사람을 양적으로만 무차별적으로 모집하는 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SI를 전문으로 하는 대기업들은 통합적 역할의 상위 인력을 선별해 채용하고 그 밑에 분야는 아웃소싱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인력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대기업이 독식하다 보니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는 데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정석균=정부는 대학교육에서 산업체가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역할을 수행중입니다. 또 연구를 위한 장비도입을 위해 600억원을 지원하고 학생에게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인턴십을 장려하고있습니다.

 ◇이경수=인력양성은 복합적인 문제로 각계각층의 재인식과 개인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벤처기업들은 개개 기업이 직원에 대한 인사정책을 펴기 힘들기 때문에 협회 등 단체가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인력난 해소의 한 방법입니다. 대덕밸리벤처연합회는 올해부터 인재개발원을 인가받아 작업에 들어가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인력양성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은 학교나 정부가 인력의 유연한 흐름을 만드는 것입니다. 학교나 기업, 국가출연연구소 연구소 인력이 대학에서 강의하고 실제 시스템의 생생한 모습을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합니다.

 ◇정석균=정부는 IT개편지원을 하면서 관련협회, 교수와 함께 표준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커리큘럼을 강제적으로 전체 학교에 사용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따릅니다. 또 교육과정이 있어도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 정부는 정보통신분야 해외 유학생을 100여명으로 늘리고 외국대학 교수초빙시 차액을 지급하는 방법을 사용해 인력고급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우수한 학생들을 국내에서 키우고 일본의 문부과학성 장학금처럼 한국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키는 내용을 구상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정리=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