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두영의 철길 따라 가는 인터넷여행>(6)불평등한 커뮤니티

19세기에 철길이 거미줄처럼 깔리기 시작하면서 같은 기차에 타고 있는 승객은 기술적으로 같은 상황에 있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여겨졌다. 마차와 달리 기차는 부자든 가난뱅이든, 남자든 여자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가리지 않고 태워준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인 생시몽의 뒤를 잇는 진보주의자들은 철도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공간이자, 국제적인 이해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교통수단이며 프랑스혁명(1789년)의 이념인 평등과 박애를 관철시킬 수 있는 물리적인 힘으로 보았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나타나듯, 당시 증기기차나 증기선을 타고 하는 공동체 여행은 자유와 평등의 느낌을 공유하고, 진보를 향해 같이 나아간다는 확신을 대중에게 심어주었다.

 그러나 이들 진보주의자는 새로운 힘, 곧 증기력에 너무 반한 나머지 객차의 등급을 무시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객차 또는 객실의 등급은 계급이나 계층, 또는 인종간에 이미 존재하던 불평등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0세기 말에 인터넷이 신경망처럼 깔리면서 네티즌들은 새로운 형태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했다. 인터넷에서는 누구의 간섭도 관리도 받지않는 데다 얼마든지 본인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리처드 스톨만을 중심으로 하는 정보 자유주의자들 역시 인터넷을 무한한 자유와 평등의 공간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정보는 나눌수록 커진다’는 명제 아래 정보공유를 주장하며 카피레프트(Copyleft)를 내세웠다.

 그러나 리눅스나 냅스터의 부진과 실패는 대중의 동정과 공감을 얻은 반면 ‘인터넷 장물아비(해커)’들의 장물 창고인 와레즈(Warez)는 그리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다.

 기차가 객차와 객실의 등급에 따라 여러 커뮤니티를 형성한 것처럼 인터넷도 콘텐츠의 종류와 대화방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커뮤니티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평등을 주장했던 커뮤니티는 다른 커뮤니티에 대한 차등으로 결국 불평등을 초래했다.

 객실에 앉아 독서를 하는 것은 기차여행의 즐거움으로 여겨졌다. 당시 이런 여유는 부르주아계급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은 문맹인 데다 책이나 신문을 살 돈도 없었으며 3등석의 산만한 분위기가 독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객실의 등급에 따라 콘텐츠의 종류가 달라진다. 같은 기차라도 1등석의 콘텐츠는 독서였지만 3등석의 콘텐츠는 대화였다.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다. 뭔가 읽고 전달(forward)하고 토론하고 싶어하는 보보족(bobos:bourgeois+bohemian)과 ‘방가(반갑습니다)’하며 ‘즐팅(즐거운 채팅)’을 하고 싶어하는 채팅족 사이에 분명 벽은 존재한다. 이런 벽은 새로운 형태의 정보격차로 굳어질 것이다.

 영국은 지방의 철도를 전국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1846년 궤간법(軌間法)을 제정해 레일 간격을 1435㎜로 통일했다. 궤간이 다른 커뮤니티의 통합을 시도한 것이다.

 19세기 초 러시아와 스페인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궤간을 각각 1524㎜, 1668㎜로 정했다. 미국도 1863년 남북전쟁에서 링컨 대통령은 전쟁 물자가 남부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궤간을 남부(1524㎜)와 다른 1435㎜로 결정했다.

 인터넷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기술표준이 등장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려 들겠지만 커뮤니티별로 그들의 고유한 이익을 위해 표준을 부정하게 될 것이다. 통합은 분쟁을 낳게 마련이다. 결국 기차나 인터넷이 인류의 평등에 기여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