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업무는 물론 생활 속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자리잡으며 또다른 가상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툴이 되고 있는 요즘. 오전에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아마도 e메일 확인이 아닐까. 그리고 짬을 내 마우스를 움직여보는 곳이 보통 서너개씩 갖고 있는 사이버 커뮤니티(동호회)일 것이다.
스토리지 전문업체인 한국EMC가 계절마다 발행하는 사외보 ‘EMC인포토피아’ 2002년 봄호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우리시대의 자화상’이라는 칼럼이 실려 있다. 친목·정보획득·취미활동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수없이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고 있는 사이버 커뮤니티 활동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를 차분히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아침 8시 30분, 출근해서 PC를 켜자마자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둘러보는 일은 이제 습관처럼 돼버린 지 오래다. 가입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해 새로 올라온 글을 한번 주욱 훑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가벼운 단상을 몇 줄 올려놓고 나면 안심이 된다. 무리에서 소외되거나 일탈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탓인가. 그러고도 하루에 서너번씩은 족히 다시 들리기 일쑤인데 그래도 왠지 개운치 않다. 점점 중독이 돼가는 느낌이다.
내가 가입해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성격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음악에 관심 있는 회원이 모여 회원 수 100여명을 훌쩍 넘어버린 커뮤니티도 있고 예전 직장동료로 구성된 친목차원의 커뮤니티, 업무상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했던 커뮤니티, 직장인 유부녀의 결집을 위해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었던 커뮤니티에 이르기까지 점차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는 고작 한두개 정도다.
네티즌은 오늘도 취미와 친목, 정보수집 등 그 성격이 다양한 커뮤니티에 발을 담그고 위안을 삼으며 이공간 저공간을 서핑하고 다니고 있다. 이제 사이버상에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건 너무도 쉬운 일로, 같은 생각을 하는 두세사람이 모이고 인터넷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맞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도 영속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 중 몇 개만이 살아남아 지속될 뿐 끈기 있는 운영진의 결속을 찾아보기 어렵다.
미래 사회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대붕괴, 신질서’라는 저서에서 이러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다양하게 늘어날수록 인간의 공동체 의식이 강화되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드러나지 않는 실체와의 무의미한 접촉으로 인해 고독감과 우울함, 그리고 파괴적인 자포자기 증세가 더욱 늘어만 갈 것이라고 그는 해석했다.
모 인터넷 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네티즌은 주변의 권유와 검색 사이트를 통해 약 66%가 1∼3개월 정도 커뮤니티에 가입해 있고, 약 63.7%가 하루에 1시간 정도를 커뮤니티 활동에 할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정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는 과연 얼마나 될까. 사람이 사람을 갈구하고 대화하고자 커뮤니티를 이루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네티즌의 한결 같은 욕망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그냥 소외되지 않고 일탈되지 않기 위해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며 소속되기에만 열중하는 네티즌과 관음증 환자처럼 엿보기를 즐기는 네티즌, 그리고 그냥 사이버 공간을 이리저리 헤매는 외로운 방랑자가 너무 많다. 하지만 그 안에서 원인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 자체도 무의미한 일 같다. 그것 역시 현상으로 바라봐야 할 우리 시대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희정·한국정보공학 과장 hjjung@ki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