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기술의 핵심은 ‘작은 것을 누가 먼저 잘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컴퓨터의 CPU나 기억소자를 비롯한 반도체 소자는 계속 고집적·고밀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하드디스크나 필름 등 기록매체도 더욱 섬세한 단위로 내려가고 있고, 각종 기계공학도 더욱 매끄러운 표면처리와 정밀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소형화 추세가 가속되다 보니 마이크로미터(㎛)의 단위를 넘어 나노미터(㎚)의 영역에 들어서게 됐다.
실제로 반도체 회로의 선 굵기가 250㎚, 산화막의 두께가 7㎚, 표면의 굴곡도가 0.5㎚인 제품이 나오고 있으며 머지않아 1개의 원자까지도 제어해야 할 때가 온다고 볼 수 있다. 유전자 공학을 비롯한 생체공학이나 화학공학도 분자 단위의 이해를 필수로 하고 있으며, 분자나 원자 하나 하나를 조작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거나 복제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이처럼 분자나 원자 하나를 조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원자현미경이다.
원자현미경은 바늘로 레코드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바늘이 달린 긴 막대기 모양의 탐침을 이용해 원자의 표면을 읽는다. 원자와 밀어내거나 끌어당기는 등 서로 작용을 하면서 탐침이 움직이는데 이 움직임을 읽어 물체의 표면을 원자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원자현미경의 원조격인 SPM은 스캐닝탐침현미경(Scanning Probe Microscope)의 약자로 보통 원자현미경으로 불린다.
SPM 가운데 처음 등장한 것은 STM(Scanning Tunneling Microscope)으로 전기가 통하는 물체의 원자 이미지를 찍는 데 이용된다. 이 기구에는 끝이 원자 1∼2개(0.1∼0.5㎚) 정도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텅스텐 탐침이 달려 있는데 이 탐침으로 도체나 반도체 물질의 표면을 떨어진 거리에서 면밀히 조사할 수 있다. 탐침 끝과 시료를 원자 한두 개 크기의 간격으로 접근시키고 양쪽에 전기를 걸어주면 비록 간격이 벌어져 있어도 전자가 에너지 벽을 뛰어넘는 양자역학적 터널링 현상이 일어나다. 즉 측정할 수 있을 만한 전류가 흐르게 된다. 이 전류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탐침을 시료 위에서 움직이면 탐침은 시료의 원자 형상에 따라 움직인다. 바로 이 탐침의 오르내림을 컴퓨터로 분석해 시료의 등고선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며, 등고선의 간격이 상당히 좁기 때문에 물질 표면을 구성하는 개개의 원자를 상세히 알 수 있다.
STM은 독일 태생의 물리학자인 거르트 비니히와 스위스 물리학자인 하인리히 로러에 의해 82년 개발됐다. 두 사람은 IBM 취리히연구소에서 최초로 STM을 설계하고 제작했다. 당시 얼마나 놀라운 기술이었는지 이들은 이 공로로 불과 4년 만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STM의 가장 큰 결점은 전기적으로 부도체인 시료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AFM(Atomic Force Microscope)이다. 이 현미경은 텅스텐으로 만든 바늘 대신 캔틸레버(cantilever)라는 작은 막대를 쓴다. 캔틸레버는 길이가 100μ, 폭 10μ, 두께 1μ으로 아주 작아 미세한 힘에 의해서도 아래 위로 쉽게 휘어지도록 만들어졌다. 또한 캔틸레버 끝부분에는 뾰족한 바늘이 달려 있으며 이 바늘의 끝은 STM의 탐침처럼 원자 몇 개 정도의 크기로 매우 첨예하다. 이 탐침을 시료 표면에 접근시키면 탐침의 원자와 시료 표면의 원자 사이의 간격에 따라 끌어당기거나 밀치는 힘이 작용한다. 이를 측정하면 원자의 모양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원자현미경이 STM이나 AFM에 그치지 않고 시료 표면의 온도 분포를 재는 SThM 등 수십 종류가 개발돼 연구용이나 산업용 분석측정기로 널리 쓰이고 있다. 연마된 광학렌즈의 굴곡도나 증착막의 두께를 재고 천연광석의 표면분석에도 활용된다. 반도체의 표면 계측이나 결함 분석에 필수고, 콤팩트디스크·자기디스크 등에 정보를 담아두는 비트의 모양새를 조사하는 데도 쓰인다.
원자현미경은 진공상태나 대기중뿐만 아니라 액체 내에서도 작동해 세포 내 구조나 세포분열 등을 관찰할 수 있어 응용범위가 대단히 넓으며 단순히 관찰·측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자를 깎아내거나 화학반응을 일으켜 분자를 합성하는 데도 쓸 수 있다.
실제로 90년 IBM 연구원들은 크세논 원자 하나 하나를 탐침에 매달아 옮겨 ‘IBM’이라는 글씨를 쓰기도 했다.
원자현미경은 나노 크기의 센서를 만드는 데도 쓰일 수 있다. 찾고자 하는 원자나 분자가 하나만 있어도 탐침이 반응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원자를 하나 하나 관찰할 수 있는 원자현미경이 점차 다양해지면서 21세기 나노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주도하는 핵심기술로 자리잡고 있다.
IBM 취리히연구소 http://www.zurich.ibm.com
PSIA http://www.psia.co.kr
비코인스트루먼트 http://www.veeco.com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