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6년 이후 부가가치통신망(VAN) 표준화 문제로 진통을 겪어온 유통·제조업계가 이번에는 전자문서교환(EDI) 시스템 표준화를 놓고 다시 공방에 휘말렸다. 발단은 최근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유통산업 XML/EDI 표준화 추진 방침.
산자부의 방침은 VAN기반 EDI, 웹기반 EDI, XML/EDI 등 유통업체마다 다른 EDI시스템을 확장성표기언어(XML)기반으로 표준화하기 위해 올 하반기부터 ‘XML/EDI 방식’을 시범 도입· 보급하겠다는 것. 그러나 이를 두고 유통업계와 제조업계가 상호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표준화는 당분간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주요 업체별 적용방식을 보면 VAN 기반은 미도파와 까르푸, 웹기반은 신세계, XML기반은 롯데 등이다.
◇통합이냐 호환이냐=유통·제조업계는 산자부의 XML/EDI 표준화라는 대전제에는 동감하지만 정작 XML기반의 EDI인프라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을 두고는 각자 의견이 다른 상황이다. 가장 큰 입장 차이를 보이는 것은 유통업계 양대 세력인 신세계와 롯데. 할인점 시장에서 가장 큰 지배력을 가진 신세계는 독자적으로 웹EDI 시스템을 구축해 사용해왔기 때문에 표준화에 섣불리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신세계는 웹 EDI 시스템의 기본 인프라는 그대로 가져가되 단계적으로 웹 EDI와 XML/EDI간 호환을 가능하게 하는 어댑터를 추가로 삽입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신세계I&C 장재익 부장은 “구축비용이 10억여원에 이르는 시스템을 XML/EDI로 교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업체마다 고유 시스템을 유지하되 XML기반에서 상호 호환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부분 수정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지난해부터 산자부와 공동으로 XML/EDI 표준화를 추진해 온 롯데는 이번 기회에 단일 표준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롯데는 신세계와 VAN사업자인 데이콤이 각자 다른 시스템을 운영함으로써 결국 제조업체가 각각의 시스템이 요구하는 양식을 따르기 위해 중복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롯데정보통신 e비즈니스부 김창보 부장은 “유통 EDI표준화는 유통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선결돼야 할 과제며 나아가 국제무대에 국내업체가 진출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스템간 호환에 그친다면 완전한 EDI 표준화가 이뤄질 수 없으며 구매를 뺀 나머지 시스템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조업계 입장=한편 제조업계는 유통업계의 논리 싸움이 지속될 경우 XML/EDI 표준화 자체가 무위에 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P&G 전산실 김의경 부장은 “현재 XML/EDI 표준화는 유통업체가 갖고 있는 기존 EDI시스템을 어떻게 하면 쉽고 저렴하게 XML/EDI로 바꿔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며 “문서 표준화에 이어 인프라 표준화를 추진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