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스토리>(8)아장닷컴(1)

  ‘감독님 아기장수 설화 아세요?’

 경북 예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안에서 필자가 안재훈 감독에게 던진 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야에 흐르는 산과 강의 풍경을 만끽하던 안 감독은 뜻밖의 질문에 당황했다.

 ‘순수한 기쁨’ ‘히치콕의 어느 하루’ 등 독립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섬세하고 사실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안 감독은 필자와 애니메이션에 대해 속깊은 대화를 나누는 몇 안되는 인물이다.

 안 감독은 천년 이상 내려온 아기장수 설화에서 매번 맞이한 아기장수 죽음의 비극을 한번 즐겁고 호쾌한 애니메이션으로 부활시키겠다는 필자의 의도에 흔쾌하게 호응해줬다. 그렇게 천년만에 처음으로 아기장수는 자신을 희극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해 줄 감독을 만난 것이다.

 필자가 아기장수 설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안 감독을 만나기 두 세달 전이었다. 기저귀를 찬 채로 아장아장 막 걷기 시작한 딸아이가 워낙 우량하게 커가고 있어서 농담 삼아 아기장수라고 불렀다. 그리고 아기를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이에따라 아기자기한 영웅 모습의 아기장수를 상상하며 누군가든 한번은 들어본 듯한 그 설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아기장수 설화는 비극 일색이었다. 삼국시대부터 등장한 아기장수 설화는 이성계에게 죽음을 당한 이야기, 일제 때 일본군에 죽음을 당한 이야기 등 100편 이상이 모두 죽음으로 끝났다. 아기장수는 힘없는 민초들의 슬픔을 안고 천년 역사의 격랑 속에 숨은 그림처럼 조용히 존재한 것이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최초의 희극 버전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솟고 왠지 가슴이 설레였다. 전통 설화에 미래와 첨단을 입히자는 의도로 인터넷 사이트들을 스토리 공간으로 하고 바이러스를 적으로 한 기본 줄거리와 인물 설정에 며칠을 소요했다. 그 오랜 아기장수의 혼과 한이 필자에게 창작의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시놉시스를 들고 제일 먼저 찾아나선 사람은 이종균 아트디렉터다. 같은 프로젝트를 하지는 않았지만 투니버스에서 늦음 밤 회사 사무실 한 켠에서 야참을 먹으며 애니메이션과 캐릭터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던 격이 없는 동료다. 그때 연령이 낮은 꼬마들에 대한 관심과 기호가 자신의 디자인 스타일과 정서에 맞는다는 그 친구의 말들이 필자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급하게 전화를 하고 만난 그 친구는 잘 나가는 아동출판 일러스트레이터 겸 캐릭터 디자이너가 돼있었다.

 필자는 숨쉴 틈 없이 바삐 살고 있는 그 친구에게 애니메이션으로 예쁜 아기 하나 낳아보자고 집요한 구애를 시작했다. 술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내 고집에 질린 것인지 세번째 만나 설득을 하던 날 밤 마침내 오케이 싸인을 했다.

 캐릭더 디자인 작업이 시작되고 나서 이 디렉터는 그림도 그리지 못하면서 말만 많은 필자의 잔소리를 묵묵하게 견디며 밤을 지샜다. 결혼도 못한 노총각으로 자신의 아기를 만들어가는 그 친구의 진지하고 집요한 모습을 보며 방송까지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느꼈다.

 하루는 이 디렉터에게 영상 속의 아기가 아닌 실제 아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디렉터를 필자의 집에 초대해 원조 아기장수인 딸을 보여줬다. 딸아이의 동작과 표정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는 이 디렉터의 시선을 보며 필자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안재훈 감독과 이종균 아트디렉터, 그리고 PD인 필자가 의기투합해 아기장수가 잉태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지온엔터테인먼트 이병규 PD elazen@mizi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