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스타들의 졸업식. 열성적인 팬들이 선물 꾸러미와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 ‘1인 졸업식’을 만들어 버리는 것은 이미 익숙한 현상이다. 올해 스타 졸업 풍경에 잡히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스타들이 공로상 수상자들이라는 점이다. 명지대를 졸업한 조성모, 대원여고를 졸업한 임은경, 광동종합고를 졸업한 김정화 모두 ‘학교를 빛낸’ 공로상 수상자들이다. ‘DDR(딴따라)=공로자?’ 조신한 몸가짐과 점잖한 태도를 중시했던 기성 세대에겐 눈이 희둥그레질 만큼 낯선 풍경이요, 이해할 수 없는 등식이다.
어른들에게 낯선 풍경은 비단 연예계만은 아니다. 게임한다고 학교에 며칠씩 안나온다면, 동네 오락실에서 학생부 선생님한테 잡혀 질질 끌려 나오는 학생만 연상된다면 아쉽게도 당신은 80년대 이전 출생자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프로게이머’를 떠올렸다면 날로 스타 시스템이 고도화되는 게임계 사정에 밝은 사람이다.
프로게이머들도 학교에서 공식 인정받고 활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프로게이머의 활동에 대해 학교측은 ‘일단 막고 보자’였으나 이제 그들의 활동을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후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구미선산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윤열 게이머의 초창기 선수 생활은 학교와 숨바꼭질의 연속이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없을 수 없었다. 선생님들과 밀고 당기고 설득하고 그 틈틈이 게임 연습해야 했던 이 선수가 작년 9월 세계 청소년 문화 축제의 게임 대회에서 우승, 문화부 장관상을 받으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교문에 플래카드가 걸리고 조회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칭찬도 받았다. 이 선수는 현재 일주일 일정으로 서울에 와 있다. iTV와 ghem TV 방송 출연, 리그가 있기 때문인데, 이젠 학교에서 수업 빠지냐고 되묻는 대신 응원을 보내온다.
작년 임요환, 홍진호 등 내로라는 게임계의 스타를 물리치고 KPGA 투어 위너스 챔피언십 우승을 거머쥔 성학승. 그는 “교장 선생님께 가장 감사드린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리그 결과도 이변이었지만, 감격의 순간에 교장 선생님을 찾는 모습도 이채로왔다. 알고보니 그의 우승 뒤에는 교장 선생님의 전폭적인 격려와 지원이 있었던 것. “네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그를 이변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성학승은 버스까지 대절해 상경한 모교 전주 영생고등학교 학생들의 단체 응원까지 받았던 행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이희상 영생고등학교 교장은 “자기 개발에 최선을 다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아름답다”며 오히려 지방 출신의 프로게이머가 핸디캡을 가질까 우려했다.
IS의 송호창 매니저는 “지방의 경우 아직 인식 부족으로 선수들의 활동에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 지역의 경우 선수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돼 있다”고 말한다. 홍진호, 서지훈, 김동수 등 대부분의 서울 지역 고등학교 출신들의 경우 몇번의 공문 씨름만 있을 뿐 공식 선수 활동이 자유로운 편이라고 한다.
조정현 겜BC 제작 팀장은 “게임이 단순한 오락에서 스포츠로 승화하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며 “하나만 잘해도 대학간다는 인식의 확산도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프로게이머인 홍진호, 김종성, 전태규, 강도경이 게임 특기생으로 동아방송대에, 신혁균이 국민대에 입학했고 임성춘이 국민총리상을 받아 대학 특채 대상이 되었다.
학교 게시판을 장식했던 낯익은 문구,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만큼 ‘게임도 국력’이라는 문구가 익숙해질 날이 올까. 온다면 기성세대는 다시 한번 놀랄 준비를 해야한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