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그래미상 수상자는 20세 여가수 알리샤 키스였다. 수상결과에 ‘의외’라는 반응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예상 밖의 파격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관왕에서 경합을 벌인 막강한 U2와 신예 인디아 아리가 더 많이 노미네이트되긴 했어도 그들에게는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U2는 이미 지난해 3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받아 이번에도 싹쓸이 하기는 애초 무리였으며 인디아 아리는 몰아주기에는 너무 생소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히트곡이 없었다. 반면 알리샤 키스는 ‘폴링’이라는 차트 1위곡을 보유하고 있고 평단으로부터 격찬을 받는 등 대중성과 음악성을 공인받은 상태였다.
6개부문 후보에 오른 그녀는 무려 5개부문 상을 휩쓸었다. 그것도 ‘올해의 곡’ ‘최우수신인’ ‘여성 R&B보컬’ ‘R&B 앨범’ ‘R&B송’ 등 알짜배기였다. 특히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곡’ ‘최우수 신인’이라는 그래미상 핵심 4개부문 중 둘을 따냈다는 점이 돋보인다. U2도 4개부문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시상식의 스포트라이트는 알리샤 키스에게 빼앗겼고 인디아 아리는 단 하나의 트로피도 만져보지 못했다.
알리샤 키스가 성공을 거둔 것은 아마도 피아노의 맛 때문일 것이다. 전미 차트 2주간 정상을 점령한 곡 ‘폴링’은 흑인음악 가운데 모처럼 전통적이며 잘 들리는 피아노의 선율을 들려준다. 여기에 알리샤는 마치 가스펠을 부르는 듯한 솔(soul) 감각의 창법에다 현대적 힙합 분위기의 리듬을 살짝 아울러 아주 진한 색감의 노래를 들려준다. 음악은 듣자마자 ‘신구의 조화’임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느낌이 다른 R&B를 선사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젊은 솔 여왕’이니 ‘앞으로 R&B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한 인물’이니 하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찬사가 쏟아지는 것은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다. 게다가 그녀는 작곡·편곡·연주의 재능도 겸비했다. ‘폴링’은 그녀가 곡을 쓴 것은 물론 프로듀스와 악기연주까지 해냈다.
또하나 강점은 휘트니 휴스턴을 키워내고 산타나의 영광을 일궈낸 음반업계의 거물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지원이다. 그가 뒤를 봐주니 이미 절반의 성공은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한국이고 미국이고 음악계의 주도권이 이미 음반산업으로 넘어간 이상, 요즘은 이 ‘백그라운드’가 매우 중요하다.
알리샤 키스가 그래미상의 선택을 받음으로써 국내 팬도 서서히 그녀에게 관심을 돌릴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에 티나 터너와 나탈리 콜도 그래미상 석권을 계기로 한국에도 바람이 일었다. 그런데 음악은 그렇다 쳐도 근래가 비주얼시대니 만큼 과연 그녀의 외모가 어떤지 궁금하다. 왠지 ‘난 남자야’의 박지윤 얼굴이 떠오른다. 알리샤 키스에게 우리의 귀와 눈을 맡길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