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덕 세미컴 사장 hordon@unitel.co.kr
한국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반도체 산업의 비메모리 편중화 현상을 탈피하기 위한 업계, 학계 및 정부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인터넷응용기기(IA)를 필두로 각종 무선·모바일 제품 등 비메모리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시장규모가 날로 커져 가고 있음을 생각할 때 우리의 반도체 업계가 필수적으로 택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외국의 많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메모리, 그것도 D램 생산국으로만 각인되어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반도체 담당 기자들을 만나서 한국의 100여개에 달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업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깜짝 놀라곤 한다.
어쨌든 한국의 여러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 업체들은 제품을 출시하려해도 자사나 기술, 제품이 제대로 외국에 알려지지 않아 본격적인 마케팅에 착수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산자부나 정통부의 지원하에 추진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의 경우도 개발 이후 단계의 판매·마케팅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 수립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정부 주도하의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는 연구위원들은 지원금을 받는 회사들에게 해당 반도체의 세계 시장 규모와 현재의 마켓 추세에 관한 상세한 리포트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것도 지지부진한 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반도체 관련 전문 전시회나 응용기기 관련 전문 전시회에 이들 회사들이 자주 참가해서 시장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습득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는 듯하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기존 혹은 신생 경쟁 회사들에 대한 정보원을 확보하지도 못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가트너 등에서 발표되는 시장 분석 자료들도 한국내의 판매량이 거의 저조하다는 걸 보면 한국의 반도체 회사들은 업계의 자료 추출을 신문이나 인터넷 등 공개된 미디어에 거의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끔씩 미국 실리콘밸리에 주재하고 있는 미디어, 정보 분석가들을 만나 보면 한국의 반도체 회사 및 반도체 담당 투자 심사역들은 아직도 향응이나 접대에 많은 돈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자료 분석 및 시장 예측을 위한 곳에는 아주 적은 지출도 꺼리고 있는 편이다.
실제로 지난주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무선시스템 관련 전시회에 참가한 어떤 한국 회사는 소액 주주와 사장이 참관 겸 관광수준 이상의 비즈니스 개발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는 지난주에 열린 반도체 벤처 대회(Semiconductor Venture Fair)에 미국, 대만, 이스라엘, 독일 심지어는 필리핀의 회사들까지 CEO가 직접 투자자 및 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자사의 기술과 전망을 프레젠테이션하며 비즈니스 네트워킹을 시도한 것과 좋은 대조가 된다.
단언하기 어렵지만 한국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성공 여부는 단지 제품을 개발하는 데에만 의미를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누구에게 어떻게 알리고 언제 어떤 비즈니스 개발의 전략을 구사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대책이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그렇기 위해서는 외국의 반도체 전문전시회에서 정부기관의 이름이 아닌 협회나 컨소시움의 이름으로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른바 시스템온칩(SoC) 혹은 주문형반도체(ASIC)와 관련된 회사 혹은 기관들이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프리 마케팅의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번주에는 독일 하노버에서 ‘세빗(CeBIT)’이 개최된다. 다음달에는 ‘쿨 칩스 2002’, 중국에서 만 3회에 걸쳐 개최되는 ‘ESC’, 베이징에서 열리는 ‘컴덱스차이나’를 비롯, ‘Wireless Comm EXPO’ ‘엔터프라이즈 와이어리스 포럼’ ‘임베디드 프로세서 포럼’ 등 많은 행사가 열린다.
한국의 비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은 이런 행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세미나 혹은 스위트 미팅(Suite meeting·행사장 주변의 호텔에서 별도로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에 대한 정보를 포착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처음으로 참가하는 전문 전시회의 경우 참가에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전시회 부스에서는 스위트 미팅에서 혹은 다른 경로로 이미 비즈니스를 구체화하기 시작한 회사들끼리의 눈인사 정도 이상의 의미가 없는데도 한국회사들은 부스 ‘사수’에만 두 눈을 부릅뜨고 최선을 다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한국관’등의 이름으로 공동 부스를 설치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를 운영하는 한국의 각종 협회, 연합회 등으로서는 회원사들에 이러한 부대 사업이 하나의 홍보 프로그램으로 비쳐지겠지만 이는 사실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다.
차라리 하나의 캐치프레이즈나 캠페인의 이름으로 부스를 조직, 운영하는 것이 훨씬 실제 비즈니스 상담에 효과적이라는 것이 지난 17년간 전시회 취재 및 컨설팅을 하면서 바이어 및 업계 관계자들에게 들어온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