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정명화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질그릇 같은 사람’

 700여개 유무선 방송장비와 부품업체의 총수격인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http://www.keic.org) 정명화 이사장(56·텔코전자 대표 )을 두고 주변사람들이 일컫는 말이다.

 협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없는 업적도 억지로 만들어 자신을 미화하려고 하는데 정 이사장은 그런 데에는 전혀 관심을 안보인다”며 역대 이사장 가운데 그를 가장 소탈한 인물로 꼽았다.

 실제 기업을 경영해오면서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육척장신(183㎝)인 정명화 이사장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다”며 겸손해 했다.

 그렇다고 그에게 승부사 기질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유망 통신업체인 헬쓰전자가 지난 88년 부도를 내는 바람에 헬쓰전자의 임원을 지냈던 그는 알토란 같은 재산을 통째로 날렸다. 그러나 그는 재기가 어려운 40대 중반임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모든 게 내복’이려니 생각하고 지금의 통신업체 텔코전자를 설립, 이 회사를 중견업체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그는 또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헬쓰전자에서 받게 될 수천만원의 퇴직금 전부를, 직원들의 월급으로 사용하라고 포기하는 등 따뜻한 인간애를 갖춘 경영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정 이사장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망은 한마디로 두텁다 못해 전폭적일 정도다.

 한 사례로 지난 2월 8일 협동조합 이사장을 선출하는 정기총회장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많은 조합원들이 참석했다. 이날은 지난 67년 조합창립 이래 최대의 참석률을 기록했고 그는 이날 총회에서 조합원들의 만장일치로 이사장에 추대됐다. 조합원들이 그에게 원한 것은 강력한 지도력이었다. 정부가 한 개 조합에서 한 개 품목만을 수의계약할 수 있도록 단체수의계약제도를 강화하고 중국 제품과의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망과 함께 지도력을 두루 겸비한 인물이 수장이 돼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정 이사장은 20여년간 기업을 경영해 오면서 올해처럼 부담스럽고 긴장되던 때가 없었다고 한다. 1000여개 조합원사가 700여개사로 줄어들고 조합의 위상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합의 표상을 기대하는 조합원들의 바람도 그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 중압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힘을 모아준다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그래서 중소기업·대기업 등 기업 규모보다는 조합원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고민하기로 했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올해로 34주년을 맞이한 조합은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업체간 기술과 정보교류 등 협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둠으로써 침체에 빠진 조합활동을 활성화하는데 미력이나마 모두 쏟아부을 계획입니다.”

 그는 특히 단체수의계약의 물품배정이 일부 업체에 편중되다 보니 조합원간에 알게 모르게 반목이 있었다며 모든 조합원이 수긍할 수 있도록 배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 조합원으로부터 신뢰받는 조합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다짐했다.

  정 이사장은 또 “향후 2∼3년내 전자공업협동조합은 물론 부품업체 등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이사장직으로 2년간 재직하는 동안 국내 부품산업이 미래 환경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초체력을 강화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중소업체들이 전문적인 기술을 개발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단체수의계약이 제도적으로 폐지되면 수익원이 사라지게 되고 기술 축적이 취약한 부품업체들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갖고 틈새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중국 부품산업 발전으로 국내 부품산업의 공동화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부품산업은 노동집약적인 사업으로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합니다. 고임금의 국내 인건비론 국제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특화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중국 및 동남아 등지로 공장을 이전하는 등 글러벌 생산기지화에 대비한 전략을 지금부터라도 수립해야 합니다.”

 정 이사장은 ‘해보자, 가보자, 계속하자’란 실천주의론을 갖고 있다. 주변 여건이 어려운 환경이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계획을 정확하게 세워놓고 그 계획을 반드시 실천한다. 이 과정에서 계획의 실현성을 검증하고 입증되면 계속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그의 이러한 기업경영론은 텔코전자가 협대역 및 광대역 겸용 무전기·해저케이블보호감시레이더시스템 등 첨단 고부가가치의 제품을 개발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특히 업체가 ‘부르는게 판매가격’이 될 정도로 값비싸고 전세계적으로 제조업체수가 적은 해저케이블보호감시레이더시스템을 국산화해 한 분야에서 텔코전자는 독자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직원들과 낚시터·야외 휴양소 등에 함께 나가 흉허물을 터놓고 지낸다는 그는 그래서 야전사령관 스타일의 최고경영자란 평을 받는다.

 정 이사장은 조합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올해 조합 해외전시회 참가를 기존 4회에서 7회로 늘리고 부품전시회에 대한 투자도 늘리는 등 부품업체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업종내 동아리도 구축해 기술협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정보를 실시간으로 신속하게 전달할 계획이다.

 최근 그는 중소 전자업체의 정보화 지원을 위해 전자카탈로그 제작, 인터넷무역 업무지원, 전자상거래 등은 물론 적은 비용으로 회원사의 기간업무 정보화가 가능한 e마켓 플레이스 구축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 내용은 좋은데 정작 중소업체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합은 조합원이 실제 체감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정책들을 내놓고 과감하게 실천해 나갈 것입니다.

 오는 2003년말 임기가 끝난후 조합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해달라고 그는 주문했다.

 

 

 △46년 서울 출생 △64년 성동고 졸 △80년 헬쓰전자 상무 △88년 효정실업 대표 △94년 텔코전자 대표 △2002년 현재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 이사장

 △96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우수경영자상 △99년 산업자원부장관 표창 수상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