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인력 양성 `헛바퀴`

대학 IT 커리큘럼 10년전 그대로

 인재 양성의 실질적인 산실인 대학이 낙후된 커리큘럼으로 인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컴퓨터·정보통신 등 정보기술(IT) 분야의 커리큘럼이 지나치게 강의 위주로 편성되고 시대에 뒤떨어져 IT와 과학기술 분야의 전체 경쟁력을 약화시키며 ‘무늬만 고급 인력’를 양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신문이 서울대·KAIST·고려대 등 주요 대학의 IT 관련 커리큘럼을 비교분석한 결과 산업계는 물론 기술이 10년 전에 비해 크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커리큘럼은 일부 과정을 제외하고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대 전기공학부의 전공 이수 과목은 89년부터 93년까지 한 과목을 제외하곤 변화가 없었으며 93년과 2001년에는 불과 3, 4개 과정이 새로 추가됐다. 또 새로 생긴 과목 역시 새로운 교과 과정이 신설된 것이 아니라 이름만 바꿔 사실상 10년 넘게 비슷한 커리큘럼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역시 93년과 지난해 학부 커리큘럼에서 ‘지능시스템 개론’ ‘컴퓨터네트워크’ 등 총 6과목이 신설됐을 뿐 학부제 이후 유사 과목이 통폐합된 경우를 제외하곤 변화가 없었다. KAIST 역시 서울대, 고려대와 마찬가지로 일부 학과가 이름만 바뀌거나 대체하는 정도에 그쳤다.

 취업후 실제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습 교육도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대는 학부별로 실험 과정을 개설해 놓고 있지만 대부분이 4학년 과정에 몰려 있고 졸업 논문으로 대체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려대는 오히려 실험 과목이 줄었다. 전기·전자공학부 커리큘럼에서 당초 6학점이었던 필수 전공 실험 과목이 4학점으로 줄어 학생들이 이론으로 배운 과목을 응용해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축소됐다.

 기술 발전에 뒤따라가지 못하는 대학교 커리큘럼은 최근 김진형 KAIST 전산학과 교수 등이 조사한 보고서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최근 정통부 위탁 과제로 연구한 ‘대학의 컴퓨터·소프트웨어 교육 강화방안’ 보고서는 국내 대학이 불분명한 교육 목표, 백화점식 커리큘럼과 같은 문제로 ‘고급 실업자’만 양산하고 있다며 현 커리큘럼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대학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경험이 있는 교수가 부족하고 ‘학부제’ 시행으로 졸업 때까지 학생들의 전공을 파악할 수 없어 프로젝트 지도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며 구조적인 처방없이는 커리큘럼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진형 교수는 “이제는 대학생 수를 늘리기 위한 ‘양’ 위주의 교육보다는 수준을 높이기 위한 ‘질’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기업이나 사회에서 원하는 것은 졸업장이 아나라 실질적인 인재라며 백화점식 교과과정을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대학 커리큘럼 수정 작업에 참여한 이경수 지니텍 사장(대덕밸리 벤처 연합회 회장)도 “지금 사용하는 커리큘럼은 이전의 산업사회 중심으로 만들어져 현실과 지나치게 괴리돼 있다”며 “교육부, 유관 부처와 합의해 표준 커리큘럼을 만드는 작업과 같은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명승욱기자 swmay@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