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과 최종 담판을 벌이러 갔던 하이닉스 채권단 등 협상팀이 ‘쟁점사안에 대한 상당부분 원칙적 합의’라는 보따리를 갖고 돌아왔다. 20여가지 세부항목 중 다수에 대해 합의를 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추가 부실처리 문제, 신규자금 지원방법이나 조건 등 협상 타결의 획을 그을 수 있는 핵심 쟁점에 대해선 아직도 협의가 진행중이어서 최종 타결 여부를 점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일각에서는 이번 협상이 결렬 목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봉합된 후 추가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른 시일내에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면 결국 불발로 끝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합의 쟁점과 남은 쟁점=이연수 외환은행 부행장은 17일 새벽 귀국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현안이 됐던 주가산정 기준일과 신규자금 지원 금리, 잔존 법인(하이닉스 비메모리사업)에 대한 투자 규모와 방법 등 상당수에 대해 합의했다”고 말했다.
매각대금으로 받을 주식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주가기준 산정일을 이번 협상을 통해 확정했고 매각 후 설립될 마이크론코리아에 지원할 대출자금의 금리를 채권단이 요구해온 시중금리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채권단 입장에서 볼 때에는 상당히 진척된 내용임에 틀림없다. 또한 잔존법인에 대한 신규 투자액을 총 매각금액에 포함시켜 마이크론이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한 것은 소액주주와 하이닉스 직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메모리 생산라인 업그레이드 등을 위해 마이크론이 채권단에 요구한 신규자금 지원규모가 확정되지 않았고 하이닉스의 우발채무(추가 부실문제)를 고려해 위탁계좌에 매각대금으로 받은 주식의 일부를 일정기간 묶어두기로 한 조건 등에 대해선 여전히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양측의 재정자문사들은 협상의 최종 결과를 결정할 이들 사안에 대해 후속 협상을 벌이고 있다.
◇타결이냐, 결렬이냐=아직도 최종적인 타결과 결렬을 예단하기는 이르다. 이연수 부행장 역시 이번 협상결과가 사실상 매각의 타결일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매각원칙에 상당부분 합의했지만 1, 2개 사항만 합의되지 않아도 협상이 깨질 수도 있는 만큼 아직 단언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사실 양측의 협상은 지난 14일(현지시각)만 해도 결렬될 분위기였다. 이 부행장보다 하루 앞서 귀국한 맨프레드 드로스트 외환은행 부행장은 “협상 타결 가능성은 여전히 50 대 50이고 신규자금 지원규모만 합의했을 뿐”이라고 말해 협상이 타결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임을 시사했다. 현지소식통도 당시 협상이 별다른 진척이 없다고 전해왔다.
그러나 15일 나머지 협상단이 귀국을 늦추면서 추가협상을 진행, 일부 쟁점사항에서 합의를 도출해 전반적인 협상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에 고무된 채권단측은 나머지 쟁점사항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실무협상을 진행해 최종 합의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협상을 타결 또는 종결한다는 계획이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마이크론과 채권단 모두 결론을 내야 할 때가 됐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내부 반발로 협상 장기화될 수도=반면 업계 일각에서는 채권단의 이같은 희망사항에도 불구하고 협상이 마무리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부간의 결정이 날 것으로 보였던 이번 협상에서조차 최대 쟁점에 대한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남은 쟁점이 불씨가 돼 채권단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종섭 하이닉스 사장이 지난달 중순 마이크론의 최종제안서를 받아와서도 채권단과 소액주주들의 내부 반발로 재협상이 진행된 만큼 이번 협상도 최종 결과물을 내오고 함께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이 부행장은 주초 채권단 회의를 열 것이냐는 질문에 “채권단 회의를 개최해 MOU 체결 등 협상안 추인 여부를 결정할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최종결론을 주채권은행에서 내릴 수도 있다는 의미지만 그만큼 채권단 내부에서도 협상반대의 의견이 팽배해 채권단의 내부의사 결정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협상의 장기화는 하이닉스·마이크론·채권단의 내부 또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최근 일고 있는 반발심리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협상주체 모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주채권단은 쟁점사항이 완결타결이 안된 상황에서 협상을 서둘러 매듭지을 수도, 장기화할 수도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