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북쪽으로 한시간쯤 자동차로 달려 일본 과학연구의 메카인 쓰쿠바시에 들어섰다.
일본 나노기술연구의 핵심축인 국립 AIST(National Institute of Advanced Industrial Science and Technology )연구소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쓰쿠바는 각종 기업체, 정부관련 연구소에 근무하는 전문과학인력이 전체인구의 20%에 달하며 도시 전체가 마치 거대한 연구시설처럼 움직이는 곳이다. 거리에서 아무데나 돌을 던져도 과학자가 맞는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과학자가 흔한 곳이다. 시가지 한가운데 들어선 쓰쿠바 AIST는 거대한 건물동 전체가 푸른 숲에 둘러싸여 쾌적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열심히 연구를 하지 않으면 미안할 생각이 들 정도로 각종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AIST는 일본 9개 지역에 산재한 국립연구기관으로 일본 기초과학연구에 주도적 역할을 해왔으나 경기악화로 정부연구예산이 감소함에 따라 최근들어 독립적인 운영체제를 갖추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리스트럭처링)을 시도하고 있었다. 전국 15개 연구소의 운영체제를 하나로 통폐합하는 한편 외부 민간기업의 투자유치에도 적극 나서고 국책연구소 직원이 벤처기업 임원도 겸직하도록 허락해 AIST내에만 14개 벤처기업이 활동중이다. 특히 쓰쿠바 AIST는 이러한 조직개혁을 가장 성공적으로 주도한 사례로 평가받았다. 지난해 직원 5700명에 90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한 거대 국책연구기관으로 발빠른 변신에 성공한 이 연구소를 한국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쓰쿠바 AIST의 나노기반 바이오연구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를 방문했다.
히라노 다카시 부소장은 취재진에 상용화에 근접한 최신 나노기반 바이오기술을 많이 소개했는데 그는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민간투자유치를 책임지는 관리자로서 한국 바이오벤처에도 AIST의 문호가 열려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는 일본의 전통적인 강점기술인 주로 큰 것을 가공해 작게 만드는 톱다운식 기술을 응용해 단기간내 상업화가 가능한 나노기반 디바이스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노기술은 생명공학분야에서 값비싼 시약재료의 가격을 낮추는데 파급효과가 큽니다.” 히라노 부소장은 나노기술로 가격대를 기존 DNA칩의 10% 수준으로 낮춘 유전자분석장치부터 자랑하기 시작했다. 이 유전자분석장치는 나노단위의 자성소재구슬에 특정 DNA 또는 RNA를 붙이는 독특한 설계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기존 DNA칩과 비교할 때 유전자를 분리하기가 훨씬 용이하고 형광이 아닌 가시광선을 이용하므로 맨눈으로도 신체조직의 이상여부를 손쉽게 진단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상업화하기 위해 지난해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내에 AIST 최초로 인포젠이란 바이오벤처를 설립했다. “요즘 정부예산이 줄면서 각 연구소는 점차 자체적으로 예산을 마련하는 분위기입니다. 나노기반 유전자분석장치는 단시일내 상용가능성이 높아 연구소 안에서 기대가 매우 큽니다.”
이 연구소에선 노인성 치매를 원천제거하는 신물질도 개발하고 있는데 뇌질환의 원인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와 나노단위에서 선택적으로 작용해 두뇌에서 치매유발 원인을 제거하는 기술이었다. 노인층이 두터워 치매문제가 심각한 일본다운 연구목표였는데 상용화에 꽤 근접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주목할 점은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가 게놈프로젝트 이후 바이오산업의 전개와 관련해 미국과 달리 단백질구조 자체보다 단백질의 기능연구에 초점을 맞추는 독특한 연구전략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일본이 강한 탄수화물분석기술을 기반으로 인체단백질과 탄수화물 신진대사의 기능연구를 강화해 5년내 관련 바이오 산업재산권의 50% 이상을 확보하고 실질적인 이익을 확보하겠다는 포석이다.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는 이밖에도 환경호르몬 검출용 DNA칩과 질병을 사전에 탐지하는 바이오센서 등 짧게는 3년 정도내에 상용화가 가능한 제품군이 많아서 적잖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