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떨고 있니.”
HP와 컴팩 합병을 최종 결정짓는 HP 이사회 투표를 하루 남겨두고 양사 못지 않게 삼보컴퓨터(HP 공급업체)와 LG전자(컴팩 공급업체)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고 있다. HP 이사회의 결정이 이들 업체에는 10억달러 규모의 비즈니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가늠자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HP는 지난해 삼보컴퓨터가 수출한 210만대 데스크톱PC의 45%를 구매한 삼보의 최대 고객이다. 반면 컴팩은 지난해 LG전자로부터 대략 40만대 규모의 노트북PC를 구매했으며 올해에는 펜티엄4 노트북PC를 포함, 최대 90여만대의 노트북PC, 그리고 개인휴대단말기(PDA), 태블릿PC 등에 이르기까지 구매 물량과 구매품목을 확대, LG전자의 최대 바이어로 부상중이다. 따라서 LG전자와 삼보컴퓨터 모두 HP 이사회가 열리는 실리콘 밸리 내 HP 본사 강당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보컴퓨터는 합병주체인 HP가 자신의 바이어라는 점에서 비교적 안도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HP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물량을 확대하겠다는 언질해온 것도 삼보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HP·컴팩의 합병 기본 원칙이 양사가 통합했을 경우 HP가 통합주체라는 것에 상관없이 양사 각 사업부의 전투력을 세밀히 비교, 시장점유율이 높은 사업중심으로 사업부 통합 작업에 나서기로 한 것은 껄끄러운 부분이다. 이럴 경우 PC나 PDA 등 사업부문은 컴팩이 HP에 비해 우위를 보이고 있어 삼보가 기대하는 것처럼 수출 물량이 늘어나기보다는 줄어들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삼보 측은 “미국 PC시장은 일반 소비자 시장과 기업시장으로 구분돼 있으며 일반 소비자 시장은 HP라인이 주도하게 된다”며 “합병이 성사될 경우 일반 소비자 시장 물량은 물론 향후에는 기업 시장용 PC제품까지도 공급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LG전자의 경우는 주로 일반 소비자용 노트북PC를 컴팩에 공급해왔다는 점에서 이 부분에 대한 사업이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PDA와 기업용 노트북PC 사업은 더욱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HP와 컴팩의 통합이 LG전자에는 위기로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합병 기본원칙이 지켜질 경우 LG전자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어 사태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는 “HP와 컴팩의 통합이 ‘1+1=2’가 아닌 1.3이나 1.5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며 “HP와 컴팩의 통합이 이들 업체에 제품을 공급해왔던 업체에 전반적인 공급량 감소로 이어질 개연성이 커 국내업체로서 최선의 시나리오는 합병무산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