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스토리>(9)아장닷컴(2)

 “손발이 짧은 2등신 아기 캐릭터로 홍콩 액션무비에서나 볼 수 있는 격투장면을 연출하느라 애니메이터분들의 고생이 많았겠네요.”

 아장닷컴 1회분이 방송되고 나서 아장닷컴 홈페이지의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하나다. 이 글은 아장닷컴 제작스태프들의 고충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어서 제작진 모두가 공감했다. 2등신의 세살짜리 아기 캐릭터로 과감한 액션을 연출하고 스토리의 중심을 이끌게 하는 구성은 처음부터 무리수였다.

 감독, 작가, 아트디렉터, 디자이너 등 프리프로덕션의 스태프가 결정되고 3일간의 합숙으로 시작된 제작회의에서 첫번째 논의된 점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아기의 연령을 5, 6세 정도로 좀더 높여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아기장수라지만 기저귀를 차고 주먹을 날리면서 싸우는 것과 갑옷 복장으로 변신한 뒤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는 것은 연출상에서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요?”

 스태프들은 하나 둘씩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기저귀를 차고 아장아장 걷는 세살 아기가 주인공이 돼 스토리와 액션을 주도하는 애니메이션은 국내외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비슷한 사례가 없었다. 초기 제작회의에서 우려의 말들이 나온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마, 변신하는 캐릭터 중에 최연소를 기록하지 않을까요. 기저귀 찬 아기가 갑옷 복장으로 변신할 때 멋있기보다는 오히려 마구 웃음이 터져 나올 겁니다.”

 고민에 쌓인 스태프 내부에서 자조적인 이야기까지 흘러 나왔다.

 “그 터져 나오는 웃음을 우리의 경쟁력으로 삼죠. 좀 더 코믹하고 과장된 구성과 연출로 방향을 설정하면 어떨까요? 자신보다 어린 동생 아기장수가 거대 괴물들을 상대해 싸운다는 건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 겁니다. 2등신의 아기가 하는 코믹한 액션이 분명히 통할 겁니다. 그리고 웃음의 대상인 아기장수를 친근한 동생이나 친구처럼 느끼게 하는 정서적인 부분도 적절히 가미하구요.”

 소수의 의견으로 시작된 2등신 홍콩 액션의 의지가 고민과 우려로 전개되던 논의의 흐름을 서서히 도전과 자신감쪽으로 바꾸어 나갔다.

 이종균 아트디렉터를 비롯한 캐릭터 디자인 스태프들은 캐릭터 컬러 지정, 휴대하는 아이템, 문양 등을 갖고 애니메이션 연출의 어려움을 미리 고민해야 했다. 이야기 속의 주적인 바이러스를 코믹하고 위협적으로 형상화하는 부분이나 이에 대항하는 동서양 설화 속의 정령들의 이미지를 잡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새로운 캐릭터 성격과 디자인 형태에 애니메이션 동작과 연출을 맞추다보면 독특한 스타일이 하나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스태프들의 바람과 의욕이 캐릭터 디자인의 내용을 점차 정리해 나갔다.

 프리프로덕션 과정에는 이밖에도 또 하나의 문제점을 인식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는 점이 배경설정을 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상당한 어려움을 주었다. 인터넷 사이트 하나하나에 부여된 성격을 배경설정 이미지로 고스란히 설정한다는 것은 아무도 상상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인터넷 사이트에 문제가 생기면 그와 연결된 현실세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구조였기에 스토리의 상당부분이 전개되는 인터넷 사이트들의 배경표현 이미지가 작품 전체의 차별성에 관건을 쥐고 있었다. 필자와 감독, 배경디자인 스태프 모두 그 고민으로 프리프로덕션 진행에 한동안 발목이 잡혔다.

 “인터넷 사이트를 하나 하나 행성으로 보고 우주에 떠있는 것처럼 설정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각 사이트들을 그 성격에 맞게 재미있고 입체적인 개념으로 디자인하면 될 것 같구요. 인터넷상의 이동은 우주속의 블랙홀처럼 연결시키면 되구요.”

 번뜩이는 설정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시발로 해서 아장닷컴에 등장하는 놀이동산, 애완동물, 채팅, 게임, 동화, 장난감 등 각각의 사이트들이 인터넷이라는 우주에 떠있는 입체적인 성이 되어 하나하나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프리프로덕션 스태프들이 자리한 기획실의 벽면에 차곡차곡 캐릭터와 배경설정 그림들이 채워져갔고 벽면의 여백이 줄어드는 만큼 제작스태프들간 거리감도 사라져갔다

 

 <이병규 미지온엔터테인먼트 PD elazen@mizion.net>